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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 (조선)

한영(韓詠, 1580년~1623년 6월 16일)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자는 영언(永言)이며,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경기도 광주 초부면(현재의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출신이다.

1603년(선조 36년) 식년과 생원시에 3등으로 합격하였고, 1606년(선조 39년) 식년문과에 병과 7등으로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다. 광해군 즉위 후 홍문관부수찬지제교겸경연검토관으로 춘추관편수관을 겸하여 《선조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이첨(李爾瞻)의 측근으로 활동하였으며, 인목대비 폐비론(廢妃論) 당시 사헌부의 관원으로서 폐비 논의에 적극 참여하였다. 1618년(광해군 10년)에는 다른 간관들과 함께 인목대비(서궁)를 폐출할 것을 상소하였다. 이후 사헌부집의, 홍문관교리, 세자시강원보덕, 성균관사성, 홍문관부응교 등을 역임하였고, 1622년(광해군 14년) 원주목사(原州牧使)로 부임하였다.

1623년 인조 반정(仁祖反正)이 일어나 광해군이 축출되자, 서인계 사관들로부터 거듭된 탄핵을 받아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 같은 해 4월 양사(兩司)에서 그가 앞장서서 폐모론(廢母論)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추형(追刑)을 상주하였고, 결국 1623년 6월 16일 사사(賜死)되었다.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사방동에 위치해 있으며, 근처에는 그의 6대조인 한확(韓確)의 묘를 비롯한 선대 묘소들이 함께 있다. 한확은 소혜왕후(성종의 모후)의 친정아버지로, 한영은 한확의 6대손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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