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漢陽)은 현재의 서울특별시에 해당하는 옛 지명으로, 한국의 성씨 체계에서 하나의 본관(本貫)으로 사용된다. 한양은 삼국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여러 차례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고려 충렬왕 때 한양부(漢陽府)로 개칭된 이후 조선 태조가 수도를 한양으로 정하면서 한성부(漢城府)로 바뀌었다. 오늘날의 서울특별시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한양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는 한양 조씨(漢陽趙氏)가 가장 대표적이며, 그 외에 한양 한씨(漢陽韓氏), 한양 애씨(漢陽艾氏), 한양 강씨(漢陽姜氏), 한양 김씨(漢陽金氏) 등이 문헌상으로 전해지나 대부분 극소수에 불과하다.
한양 조씨(漢陽趙氏)는 한양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 중 가장 인구가 많고 역사가 깊다. 시조는 고려 후기에 조순대부 첨의중서사(朝順大夫 僉議中書事)를 지낸 조지수(趙之壽)이다. 조지수의 아들 조휘(趙暉)는 1258년 몽골에 투항하여 쌍성총관부의 초대 총관이 되었고, 이후 4대에 걸쳐 총관직을 세습하였다. 조휘의 손자 조돈(趙暾)은 공민왕 때 고려에 귀순하여 쌍성총관부 수복에 공을 세웠으며, 그의 후손들은 조선 개국에 참여하여 여러 공신을 배출하였다. 조선 시대의 대표적 인물로는 기묘사화로 희생된 조광조(趙光祖)가 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기준 한양 조씨의 인구는 332,580명으로, 조씨(趙氏) 본관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한양 한씨(漢陽韓氏)는 한(韓) 씨의 여러 본관 중 하나로 존재하나, 청주 한씨 등 다른 본관에 비해 인구가 매우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체적인 시조와 계보에 대해서는 공인된 기록이 충분하지 않다.
한양 애씨(漢陽艾氏)는 애(艾) 씨의 본관 중 하나로 전해지나, 인구가 극소수에 불과하여 상세한 정보는 제한적이다.
한양 강씨(漢陽姜氏)와 한양 김씨(漢陽金氏)는 2000년 통계청 자료에서 각각 3명, 36명 수준으로 확인되는 매우 희소한 본관이다. 이들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나 시조에 관한 정보는 부족하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할 때, 한양(본관)은 서울특별시의 옛 지명인 한양을 관향으로 하는 여러 성씨의 본관을 통칭하는 개념이다. 이 중 한양 조씨만이 역사적 기록과 인구 규모 면에서 공신력 있는 정보가 충분히 확인되며, 나머지 성씨들은 인구가 극소수이거나 기록이 부족하여 상세한 설명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