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 조씨(漢陽趙氏)는 서울특별시(옛 한양)를 관향(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는 고려 후기 조순대부 첨의중서사(朝順大夫 僉議中書事)를 지낸 조지수(趙之壽)이다. 조지수는 덕원부(德源府) 용진현(龍津縣, 현 함경남도 문천시·원산시 일대)에 세거해 온 토착 사족의 후예로 전해진다.
역사적 배경
1258년(고려 고종 45년), 조지수의 아들 조휘(趙暉)가 군사를 일으켜 동북면병마사 신집평 등을 죽이고 화주(和州) 이북의 땅을 몽골에 투항함으로써 초대 쌍성총관(雙城摠管)이 되었고, 이후 4대에 걸쳐 총관직을 세습하였다. 1356년(공민왕 5년), 조휘의 증손 조소생(趙小生)이 4대째 쌍성총관으로 있을 때, 조소생의 숙부 조돈(趙暾)이 공민왕의 명을 받은 동북면병마사 유인우(柳仁雨)에게 협조하여 쌍성총관부를 수복하고 고려가 철령 이북의 옛 땅을 되찾는 데 공을 세웠다.
조돈의 아들 조인벽(趙仁璧)은 이성계(태조)의 누나인 정화공주와 혼인하여 이성계의 매부가 되었고, 조인옥(趙仁沃)은 조선 개국 1등 공신에 책봉되었다. 조인벽의 아들 조온(趙溫)은 개국·정사·좌명 3공신에, 조연(趙涓)은 좌명공신에 책봉되었으며, 조휘의 종증손 조영무(趙英茂) 또한 개국·정사·좌명 3공신에 책봉되어 태종 대에 우의정에 올랐다. 이와 같이 한양 조씨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걸쳐 동북면 지역의 유력 가문으로서 이성계 가문과 혼인 및 정치적 연대를 통해 조선 개국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조선 시대 대표적인 명문거족으로 자리 잡았다.
주요 인물
조선 시대의 대표적 인물로는 중종 대의 개혁 정치가인 정암(靜菴) 조광조(趙光祖, 1482~1519)가 있다. 그는 사림파의 영수로서 도덕 정치와 왕도 정치를 구현하고자 향약을 보급하는 등 개혁을 추진하였으나,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사사되었다. 근현대 인물로는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인 조병옥(趙炳玉, 1894~1960), 청록파 시인 조지훈(趙芝薰, 1920~1968), 시인 조병화(趙炳華, 1921~2003) 등이 있다.
분파
7세를 기준으로 한풍군파(漢豊君派), 도제공파(都制公派), 참판공파(參判公派), 고사공파(庫使公派), 총제공파(摠制公派), 돈녕공파(敦寧公派), 공안공파(恭安公派), 병참공파(兵參公派), 현령공파(縣令公派), 현감공파(縣監公派), 사정공파(司正公派), 파서공파(坡西公派), 봉례공파(奉禮公派), 사직공파(司直公派), 정랑공파(正郞公派), 호의공파(戶議公派), 참의공파(參議公派), 대호군공파(大護軍公派) 등 다수의 분파가 있다.
집성촌
경기도 연천군, 함경남도 북청군,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주실 마을), 전라남도 무안군 일로면,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주생면, 경기도 시흥시,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등 전국 각지에 집성촌이 분포한다.
인구
2015년 통계청 인구 조사 기준으로 한양 조씨는 약 332,580명으로, 전체 조씨(趙氏) 성씨 중 가장 큰 본관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