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암 (韓巖, 1876년 ~ 1951년)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정국의 한국 불교계를 대표하는 선승(禪僧)이다. 속명은 이영학(李永學), 법명은 한암(韓巖), 법호는 한암(寒巖)이며, 당호는 무산(霧山)이다.
생애
1876년(고종 13) 강원도 철원군에서 태어났다. 14세에 금강산 표훈사(表訓寺)에서 연곡(連谷)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사미계를 받았고, 1900년 건봉사(乾鳳寺)에서 구족계를 수지하였다. 젊은 시절 제방 선원(禪院)을 다니며 참선 수행에 매진하였으며, 특히 경허(鏡虛) 선사의 법을 이은 수제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수행 및 교화 활동
한암 스님은 강원도 건봉사, 백담사, 오대산 상원사 등지에서 오랫동안 주석하며 후학 양성과 선풍 진작에 힘썼다. 그는 간화선(看話禪)을 수행의 요체로 삼았으며, "참선은 부처님의 심인(心印)을 이어받는 것"이라며 정진을 강조했다. 제자로 탄허(呑虛), 향곡(香谷), 청담(靑潭) 등 한국 불교 현대사의 거목들을 배출하여 '조계종단의 스승'으로 추앙받는다.
항일 불교 운동
일제강점기에는 조선불교선교양종(朝鮮佛敎禪敎兩宗) 수교(首敎)를 역임하며 일본 불교의 영향력 확대와 사찰령(寺刹令) 등에 맞서 한국 불교의 자주성을 수호하는 데 앞장섰다. 1940년대에는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끝까지 한국인의 이름과 승복을 고수하며 민족정신을 지켰다.
입적 및 평가
1951년(한국전쟁 중) 76세로 강원도 양양군 오대산 상원사(上院寺)에서 입적하였다. 법랍 52세, 세수 76세이다. 1984년 대한불교조계종으로부터 종사(宗師) 법계가 추서되었으며, 상원사에는 그의 진영과 부도비가 모셔져 있다. 한국 근대 선불교의 중흥조이자 민족 불교의 수호자로 평가받는다.
참고: '한암'은 위 인물 외에 지명(한암리 등)이나 타인의 호(號)로 쓰이는 경우가 있으나, 백과사전적 표제어로는 위 한국 불교사의 대표적 선승을 지칭하는 경우가 가장 일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