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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아이슬러

한스 아이슬러(Hanns Eisler, 1898년 7월 6일 ~ 1962년 9월 6일)는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난 오스트리아 국적의 작곡가이다. 본명은 요하네스 아이슬러(Johannes Eisler)이다.

생애

아버지 루돌프 아이슬러는 철학 교수였으며, 어머니 마리아 이다 피셔는 도축업자 집안 출신이었다. 1901년 가족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빈으로 이주하였고, 한스 아이슬러는 청소년기를 빈에서 보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에 징집되어 최전선에서 복무하였고 여러 차례 부상을 입었다.

종전 후 1919년부터 1923년까지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제자로 음악 수업을 받았으며, 이 시기가 그가 받은 최초의 전문적인 음악 교육이었다. 쇤베르크의 12음 기법에 강한 영향을 받았으나, 이후 쇤베르크의 예술지상주의적 태도와 아이슬러의 사회주의적 성향이 충돌하여 사제 관계는 단절되었다.

1925년 베를린으로 이주하여 음악학원 교수직을 얻었고, 1926년 독일공산당에 입당하였다. 1930년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만나 이후 긴밀한 협력 관계를 형성하였으며, 《통일전선가》(Einheitsfrontlied), 《연대의 노래》(Solidaritätslied) 등의 민중가요를 공동으로 창작하였다.

1933년 나치가 집권하자 유대인이자 공산당원이었던 아이슬러는 망명길에 올랐다. 프랑스, 소련, 영국, 덴마크, 체코, 스페인 등 유럽 각지를 떠돌다 1938년 미국으로 최종 망명하였다. 미국에서는 주로 영화음악 작곡으로 생계를 유지하였으며, 테오도어 아도르노와 공동으로 영화음악 이론서 《영화를 위한 작곡》(Composing for the Films)을 저술하였다. 1942년부터는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하였고, 쇤베르크의 추천으로 UCLA 객원교수를 역임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서 반미활동위원회(HUAC) 청문회에 출석하였고, 1947년 국외 추방 형식으로 유럽에 귀국하였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권유로 동독에 정착하였으며, 요하네스 베허의 시에 곡을 붙인 《폐허에서 부활하여》(Auferstanden aus Ruinen)는 1949년 수립된 동독의 국가로 지정되었다.

동독 정착 후에도 창작 활동을 이어갔으나, 동독 지도층의 경직된 문화 정책과 오페라 《요한 파우스투스》 대본을 둘러싼 논쟁으로 인해 입지가 약화되었다. 1956년 브레히트의 사망 이후 우울증과 건강 악화를 겪었으며, 1962년 동베를린에서 사망하였다.

주요 작품

성악 분야에서는 《독일 교향곡》(Deutsche Sinfonie, 1935~1959), 《레닌 레퀴엠》(Lenin Requiem, 1936~1937), 《헐리우드 노래집》(Hollywooder Liederbuch, 1942~1947), 《진지한 노래들》(Ernste Gesänge, 1962) 등이 대표적이다. 기악 분야에서는 피아노 소나타 제1번(1923), 제2번(1924~1925), 제3번(1943), 《비에 관한 열네 가지의 묘사》(14 Arten den Regen zu beschreiben, 1940), 현악 4중주(1938) 등을 작곡하였다. 극음악 및 영화음악으로는 브레히트의 연극 《조처》(Die Maßnahme, 1930), 《어머니》(Die Mutter, 1931), 영화 《쿨레 밤페》(Kuhle Wampe, 1931) 등의 음악이 알려져 있다.

창작 성향

초기에는 쇤베르크의 12음 기법과 무조 음악의 영향을 받았으나, 이후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하고 명확한 민중가요 양식으로 전환하였다. 바흐 음악의 조형미와 재즈·블루스의 요소를 결합한 독자적인 작곡 기법을 발전시켰으며, 음악을 사회주의 발전을 위한 정치적·사회적 도구로 간주하였다. 망명 시기에는 다시 12음 기법을 작곡에 도입하는 등 음악적 변화를 보였다.

사후 영향

베를린에 위치한 국립 음악대학은 그의 이름을 따서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음악대학교'(Hochschule für Musik Hanns Eisler Berlin)로 명명되었다. 그의 민중가요들은 세계 각국의 노동 운동 현장에서 번안되어 사용되었으며, 한국에서도 《비밀스러운 행진》이 《투쟁의 물결》이라는 제목으로 번안되어 불렸다. 서독에서는 1970년대에 아이슬러 음악에 대한 공연·출판·연구 금지 조치가 해제되었고, 이후 재평가가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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