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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준

한성준(韓成俊, 1874년 6월 12일~1942년 7월)은 대한제국 말기부터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판소리 고수이자 민속무용가이다.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본명은 춘석(春錫)이다.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 신안리에서 아버지 한천호(韓天昊)와 어머니 김씨 사이의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한성준은 7세 때부터 외할아버지 백운채(白雲彩)로부터 춤과 북을 배웠다. 14세 때부터 3년간 홍성의 서학조(徐學祖)에게 줄타기와 땅재주를 배웠으며, 이어 수덕산의 박순조(朴順祚) 문하에서 20세가 넘도록 춤과 장단 공부를 하였다. 1894년 이후 유랑생활을 하다가 한말에 개관한 원각사(圓覺社) 무대에 출연하면서 서울에 정착하였다. 원각사가 없어진 뒤에는 협률사(協律社)·연흥사(延興社) 등의 단체에서 지방을 순회공연하였다.

이 시기에 고수로서 15차의 창방(唱榜)을 치렀으며, 김창환(金昌煥)·박기홍(朴基洪)·송만갑(宋萬甲)·이동백(李東伯)·김창룡(金昌龍)·정정렬(丁貞烈) 등 당대 명창들의 고수로 이름을 날렸다. 이때 궁중무용에 접하면서 뒷날 「태평무(太平舞)」와 「학무(鶴舞)」를 만드는 데 깊은 영향을 받게 되었다.

1930년 조선음악무용연구회를 조직하고, 1934년에는 무용만을 전문으로 하는 조선무용연구소를 창설하여 제자를 길렀다. 1935년에는 부민관(府民館)에서 '한성준무용공연회'를 가졌으며, 이후 일본 도쿄를 비롯한 주요 도시를 순회공연하여 무용을 일본에 소개하였다. 1941년에는 일본의 모던일본사(모던 니혼 사)가 주는 예술상 중 무용 부문상을 수상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태평무」, 「학무」, 「신선무」, 「살풀이춤」, 「한량무」, 「사공무」, 「농악무」 등이 있다. 제자로는 김천흥(金千興)·김보남(金寶男)·이강선(李剛仙)·장홍심(張紅心)·한영숙(韓英淑)·강선영(姜善泳)·이매방(李梅芳) 등이 있다. 특히 손녀 한영숙(1920~1989)을 유일한 무용 후계자로 지목하여 전통춤의 맥을 이어주었다.

한성준은 혼란한 정세 속에서도 흩어져 있거나 사라져 가던 한국 고전무용을 집대성하고 계승·발전시킨 공적이 높이 평가되며, 오늘날 '근대 한국춤의 아버지'로 불린다. 만년에는 민속 무용에 전념하였으며 특히 학춤에 뛰어났다. 2024년에는 탄신 150주년을 맞아 그의 춤과 소리를 기리는 예술제가 충청남도 홍성에서 개최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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