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질(韓尙質, 1347년 ~ 1410년)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다.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청성부원군(淸城府院君) 한악(韓渥)의 아들이다. 그는 고려의 국운이 기울던 시기, 명나라와의 외교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과 조선 건국 과정에서 활약하여 조선의 개국공신이 되었다.
생애
한상질은 1347년(충목왕 3년)에 태어나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다. 우왕(禑王) 때에는 지신사(知申事)를 거쳐 밀직부사(密直副使)를 역임하는 등 여러 요직을 거쳤다.그는 명나라와의 외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고려가 명나라의 철령위 설치 통보에 반발하며 요동 정벌을 추진할 때, 명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외교적 해결을 시도하기도 했다. 또한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단행한 이후에는 이성계의 편에 서서 역성혁명(易姓革命)을 지지했다.
조선 건국 이후에는 1392년(태조 1년) 조선 개국공신 2등에 책록되었고, 청성군(淸城君)에 봉해졌다. 이후 판삼사사(判三司事), 판호조사(判戶曹事), 판의흥삼군부사(判義興三軍府事) 등을 역임했으며, 1398년(태조 7년)에는 청성백(淸城伯)으로 진봉되었다. 태종(太宗) 때인 1410년(태종 10년)에 사망했다.
평가
한상질은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교체되는 격변기에 실리적인 선택을 통해 새로운 왕조의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한 인물로 평가된다. 다만, 고려에 대한 충절을 버리고 조선 건국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두문동 72현과 같은 고려의 충신들과는 대비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행적은 고려 말 혼란기 지식인들의 복잡한 선택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로 해석될 수 있다.가족 관계
- 아버지: 한악(韓渥)
- 아들: 한명회(韓明會) - 조선 세조 때의 권신 한명회(韓明澮)와는 동명이인이다.
- 아들: 한창(韓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