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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억 (시인)

한상억(韓相億, 1915~1992)

생애

한상억은 1915년 9월 1일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 도장리에서 태어났다. 강화 온수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재의 인천고등학교 전신인 인천공립상업학교를 1935년에 졸업하였다. 이후 줄곧 인천에 거주하며 시작(詩作) 활동을 전개하였다. 호는 이록(二綠)이다.

1956년 『자유문학』에 시가 추천되어 문단에 정식 등단하였다. 1992년 11월 8일 사망하였다.

문학 및 문화 활동

해방 직후인 1946년 7월, 표양문이 주도한 <시와 산문동인회>에 참여하여 인천 문단의 초기 형성에 기여하였다. 1949년 8월에는 <인천예술인협회> 결성에 문학 분야 회원으로 참여하였고, 1950년 6월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인천지부(인천문총)> 창립에도 가담하였다. 한국전쟁 발발 후에는 <인천문총구국대>에 참여하여 반공 문화 운동을 전개하였다.

5·16 군사정변 이후 새롭게 구성된 인천예총의 초대 부회장을 맡았으며, 이후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중앙위원, 한국문화예술인총연합회 경기도지부장을 역임하였다. 1958년 인천시 문화상, 1963년 경기도 문화상을 수상하였다.

시인으로서뿐만 아니라 향토사가 및 언론인으로도 활동하였다. 1965년 인천시사편찬위원이 되어 최초의 『인천시사』 발간에 참여하였고, 주간인천 주필, 경기일보·경기매일신문 논설위원을 지냈다.

주요 작품

시집으로 『평행선의 대결』(1961, 범조사), 『창변사유』, 1976년 간행된 회갑 기념 시집 등이 있다. 『평행선의 대결』에는 「인천 찬가」 연작시가 수록되어 있으며, 이 중 「문학산의 노래」, 「월미도의 노래」, 「송도의 노래」, 「신포동의 노래」 등이 포함되어 있다. 1976년 회갑 기념 시집에는 「문학산의 꽃」이 실렸다.

한상억은 우리나라 강산을 예찬하는 서정시를 주로 썼으며, 특히 인천과 문학산에 대한 향토애를 시에 담아 표현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리운 금강산」

한상억의 이름을 널리 알린 것은 가곡 「그리운 금강산」의 작사였다. 1961년 KBS의 의뢰로 같은 강화 출신의 작곡가 최영섭(崔永燮)과 협업하여 칸타타 『아름다운 내 강산』의 일부로 「그리운 금강산」을 발표하였다. 금강산의 절경과 남북 분단으로 인해 자유롭게 갈 수 없는 안타까운 심경을 표현한 이 곡은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 가곡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을 계기로 한상억이 직접 가사의 일부를 수정하였다. 이 노래는 고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수록되었으며,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과 강화 평화전망대 등에 노래비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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