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원(翰林院)은 중국 당나라 때 처음 설립된 이후 청나라 말기까지 존속한 궁정 학술·행정 기관이다. '한림(翰林)'은 '붓(翰)의 숲(林)'이라는 뜻으로, 문필가들이 모인 관청(院)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당 현종(玄宗) 재위 시기인 8세기 초 장안(長安) 궁중에 처음 설치되었으며, 황실의 조서(詔書) 작성, 국사 편찬, 유교 경전의 공식 해석 등 국가의 문서 및 학술 업무를 담당하였다.
한림원에서 근무하는 학자를 한림학사(翰林學士)라고 불렀다. 초기에는 시인, 유학자, 도교·불교 전문가, 점술가, 서예가 등 다양한 배경의 인재들이 임명되었으나, 점차 문장력이 뛰어난 문인들이 중심이 되었다. 당 현종은 738년에 한림학사원(翰林學士院)이라는 별도의 건물을 짓고 학사 제도를 정비하였다. 한림학사들은 황제의 칙령 초안 작성, 군사 작전 관련 명령, 사면령 등 중요한 문서를 담당하였으며, 일부 학사는 정치적 자문 역할까지 수행하여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였다. 당 덕종(德宗) 시기의 학사였던 육지(陸贄)는 정치 결정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여 '내상(內相)'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송나라(960~1279)에서는 한림원 제도가 계승되어 학사 수가 6명으로 고정되었고, 원풍(元豐) 연간의 관제 개혁 이후에는 한림학사가 정식 관직으로 자리 잡았다. 원나라(1279~1368)에서는 한림원이 유지되었으며, 몽골어 문서 번역을 담당하는 몽골한림원(蒙古翰林院)이 별도로 설치되기도 하였다. 명나라(1368~1644)부터는 한림원의 조직이 더욱 복잡해졌으며, 학사들의 공식 품계는 높지 않았지만 한림원에서의 경력이 이후 고위 관직 진출의 발판이 되었다. 청나라(1644~1911)에서는 만주인과 한족 학사가 각각 임명되었으며, 한림원의 직위는 실질적인 문서 작성 업무보다 명예적 성격이 강해졌다. 한림원은 1911년 청나라가 멸망하면서 함께 소멸하였다.
한림원은 중국 역대 왕조에서 최고 수준의 학자 집단으로 인정받았으며, 당나라의 장구령(張九齡), 백거이(白居易), 송나라의 소식(蘇軾), 구양수(歐陽脩), 왕안석(王安石), 사마광(司馬光), 명나라의 장거정(張居正), 청나라의 증국번(曾國藩), 이홍장(李鴻章) 등 유명 인사들이 한림학사를 역임하였다. 한림원에 선발되는 것을 '점한림(点翰林)'이라 하여 매우 영광스러운 일로 여겼다.
한림원과 유사한 기관으로는 한국의 고려시대 학사원(學士院), 조선시대의 집현전(集賢殿)과 홍문관(弘文館)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