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韓曁, 158년 이전 ~ 238년)는 중국 삼국 시대 조위(曹魏)의 관료이다. 자는 공지(公至)이며, 남양군 자양현(堵陽縣, 현재의 중국 허난성) 사람이다.
개요
한왕 신(韓王信)의 후손으로, 하동태수 한술(韓術)의 손자이자 남군태수 한순(韓純)의 아들이다. 후한 말에서 조위 건국 이후까지 활동하며, 특히 수배(水排, 수력으로 움직이는 풀무)를 개발하여 야금(冶金) 효율을 3배로 높인 인물로 유명하다.
생애
- 원수 갚음: 군의 호족 진무(陳茂)가 아버지와 형을 모함하여 사형에 이르게 하자,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으면서 품팔이로 돈을 모아 몰래 사람을 고용해 원수를 갚았다. 이 일로 명성을 얻었다.
- 은거: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었으나 이름을 바꾸고 산 속으로 은거했다. 원술(袁術)과 유표(劉表)의 초빙을 피해 도망다니다가, 결국 유표를 두려워하여 출사해 의성장(邔城長)이 되었다.
- 조조 휘하: 건안 13년(208년), 조조(曹操)가 형주를 평정한 후 승상사조속(丞相士曹屬)으로 벽소되었고, 이후 악릉태수(樂陵太守), 감야알자(監冶謁者)를 역임했다.
- 수배 발명: 감야알자 재임 시절, 기존의 마배(馬排, 말을 이용한 풀무)나 인배(人排, 사람이 움직이는 풀무)의 비효율을 개선하여 물의 힘을 이용한 수배(水排)를 개발, 생산성을 3배로 높였다. 이 공로로 사금도위(司金都尉)에 임명되어 9경(九卿)에 버금가는 지위에 올랐다.
- 조위 건국 후: 220년 조비(曹丕)가 조위를 건국하자 의성정후(宜城亭侯)에 봉해졌고, 226년에는 태상(太常)으로 승진하여 남향정후(南鄉亭侯, 식읍 200호)가 되었다. 업(鄴)에 있던 신주를 낙양(洛陽)으로 옮겨 종묘를 세우고 제도를 정비했다.
- 말년: 238년(경초 2년), 조예(曹叡)가 "나이가 여든이 넘었는데도 바른 도리를 준수함이 더욱 굳다"며 그를 사도(司徒)에 임명했으나, 같은 해 4월 9일에 사망했다. 시호는 공후(恭侯).
주요 업적
- 수배(水排) 발명: 물레방아의 원리를 이용해 대형 풀무를 움직이는 수력 야금 기술로, 중국 철기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렸다.
- 종묘 제도 정비: 조위의 종묘를 업에서 낙양으로 옮기고 제사 제도를 정비하여 법도에 어긋나는 제사를 폐지했다.
가계
- 조부: 한술(韓術) - 하동태수
- 부: 한순(韓純) - 남군태수
- 선조: 한왕 신(韓王信) - 전한 초기의 이성 제후왕
같이 보기
- 삼국지 인물 목록
- 조위
- 수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