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천문학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시작된,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학문 분야 중 하나이다. 한국의 역대 왕조는 천상(天象)을 국가와 왕자의 안위를 예측하기 위한 점성적 관점에서 바라보았으며, 특히 일식과 월식의 예언은 국가적 권위를 과시하는 수단이 되었다. 이러한 하늘 현상에 대한 민감성은 천문학 발전의 주요 동인이 되었다.
선사시대 및 삼국시대
선사시대의 고인돌 덮개돌에서 별자리 모양이 발견된 사례가 있다. 기원전 108년 한사군 설치 이후 중국 한대 문화가 유입되면서 개천설(蓋天說)과 혼천설(渾天說)이 전래되었고, 4~5세기경에는 삼국의 천문학 속에 토착화되었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는 일월성신도(日月星辰圖)와 사신도(四神圖)가 그려져 있으며, 대표적인 천문대로는 신라의 첨성대(瞻星臺, 632~647년경 축조), 고구려의 첨성대, 백제의 점성대가 있었다. 신라 첨성대는 현존하는 아시아 최고(最古)의 천문 관측 시설이다.
삼국시대의 천문 관측 기록은 《삼국사기》에 다수 남아 있으며, 일식, 혜성, 유성, 운석, 객성, 행성의 엄폐 현상 등이 기록되었다. 백제는 545년과 602년에 역박사와 천문서를 일본에 전하기도 하였다.
고려시대
고려시대(918~1392)에는 천체 관측이 특히 발달하였으며, 그 관측 기록은 독자적이고 정확한 것으로 평가된다. 《고려사》 천문지에는 475년간 132회의 일식 기록을 비롯하여 혜성, 유성, 운석, 객성, 금성과 목성의 주현(晝見)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천문 관측과 역법을 관장하는 관서로는 태복감(太卜監)과 태사국(太史局)이 설치되었으며, 이후 사천대(司天臺), 사천감(司天監), 서운관(書雲觀) 등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고려는 당의 선명력(宣明曆)을 약 500년간 사용하다가, 충선왕대에 원의 수시력(授時曆)을 도입하였다.
조선시대
조선시대는 한국 전통 천문학의 전성기로 평가된다. 세종대(1418~1450)에는 천문학이 획기적으로 발전하였다. 1432년에는 목간의(木簡儀)를 제작하여 한양의 위도를 측정하였고, 1433년에는 혼천의(渾天儀), 간의(簡儀), 앙부일구(仰釜日晷, 해시계), 자격루(自擊漏, 물시계) 등 다양한 천문 관측 기구가 제작되었다. 또한 자주적 역법 체계 확립을 위해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과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을 편찬하여 조선의 역법을 정비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서양 천문학이 도입되었다. 1631년 정두원이 명에서 서양 천문학 서적을 가져왔고, 1645년 소현세자가 청에서 서양 천문학서를 들여왔다. 1653년부터는 시헌력(時憲曆)이 시행되었으며, 티코 브라헤의 지구 중심 우주 체계가 전통적 혼천설을 대체하게 되었다. 18세기 초에는 마테오 리치의 '12중천설'이 공인된 우주관으로 자리 잡았다.
조선시대의 천문 관측 기관은 서운관(후에 관상감으로 개칭)이었으며, 영의정이 최고 책임자를 겸직하는 특이한 체제를 갖추었다. 천문학자로는 이순지, 김담, 장영실, 이천, 송이영, 이민철, 홍대용, 남병철, 남병길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홍대용은 지구 자전설(地轉說)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의 천체 관측 기록은 매우 풍부하다. 《조선왕조실록》과 《증보문헌비고》에 기록된 일식 관측은 총 190회, 혜성 관측은 103회에 달하며, 이 외에도 수백 회의 태양 흑점, 유성, 운석, 유성우 관측 기록이 남아 있다.
근현대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 이후, 1948년 서울대학교에 천문기상학과가 개설되면서 본격적인 현대 천문학 교육이 시작되었다. 1967년 연세대학교, 1985년 경희대학교 등에 관련 학과가 설치되었다. 1974년에는 국립천문대(현 한국천문연구원)가 설립되었고, 1978년 소백산천체관측소에 61cm 반사망원경이 설치되었다. 이후 보현산천문대의 1.8m 반사망원경, 대덕전파천문대의 14m 전파망원경 등 주요 연구 시설이 구축되었다. 한국은 1973년 국제천문연맹(IAU)에 가입하였으며, 한국천문학회는 1965년 창설되어 현재 40여 개 대학과 연구소의 500명 이상의 연구자들이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