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쿠 고젠(일본어: 板額御前, Hangaku Gozen)은 일본 헤이안 시대 말기에서 가마쿠라 시대 초기에 걸쳐 활약한 여성 무사(onna-musha)이다. 생몰년은 알려져 있지 않다. 문헌에 따라 坂額 또는 飯角 등으로도 표기된다. 일본 역사상 드문 여무예자(女武芸者)로, 도모에 고젠(巴御前)과 함께 여걸의 대명사로 꼽혀 왔다. '고젠(御前)'은 이름이 아니라 여성에게 붙는 경칭으로, '레이디'에 해당한다.
출신과 배경
한가쿠 고젠은 에치고국(越後国, 현 니가타현)의 유력 호족인 조 씨(城氏) 출신이다. 아버지는 조 스케쿠니(城資国)이며, 오빠로 조 스케나가(城資永)와 조 나가모치(城長茂)가 있었다. 조 씨는 간무 헤이시(桓武平氏) 계통으로 헤이케(平家) 지지 세력이었다. 지쇼·주에이의 난(治承・寿永の乱, 겐페이 전쟁)을 거치며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겐닌의 난과 활약
1201년(겐닌 원년), 조 씨 일족이 가마쿠라 막부에 맞서 일으킨 반란(겐닌의 난, 建仁の乱)에 참전하였다. 조카인 조 스케모리(城資盛)와 함께 에치고의 도리사카 성(鳥坂城)에서 농성전을 벌였다. 《아즈마카가미》(吾妻鏡)에 따르면, 한가쿠는 "여성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백발백중의 무예가 그 아비나 오라비를 능가하였으니 사람마다 기이해하고 특이하다 하였다. 합전에서는 나날이 뛰어난 군략을 펼쳤으며, 사내와 같이 상투를 틀고 복대를 두르고 성루 위에 있으면서 습격해 오는 무리들을 쏘았다. 명중하는 것마다 죽지 않는 것이 없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약 3,000명의 병력을 지휘하여 사사키 모리쓰나(佐々木盛綱)가 이끄는 약 10,000명의 막부군에 맞서 석 달간 농성전을 전개하였으나, 최종적으로 후지사와 기요치카(藤沢清親)가 쏜 화살에 양쪽 다리를 맞고 포로로 잡혔다. 이와 동시에 반란군은 붕괴되었다.
포로 생활과 이후
가마쿠라로 압송되어 2대 쇼군 미나모토노 요리이에(源頼家) 앞에 끌려갔으나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어 막부의 노련한 장수들조차 놀랄 정도였다. 그 태도에 감명을 받은 가이 겐지(甲斐源氏) 일족의 아사리 요시토오(浅利義遠)가 요리이에에게 청하여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는 것이 허락되었다.
이후 가이국(甲斐国, 현 야마나시현)으로 이주하여 여생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야마나시현 후에후키시(笛吹市) 경내에 한가쿠 고젠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한가쿠즈카(板額塚)가 있다.
신체와 외모에 관한 기록
《아즈마카가미》에는 "용모로만 보자면 매우 능원(陵園)의 배필답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미인 축에 드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후세의 기록에서는 미인이 아닌 것으로 취급되기도 했는데, 이는 미모와 무용(활을 다룰 정도의 튼실한 근육)이 서로 이미지 매칭이 되지 않는다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 일설에 키가 약 188cm(6자 2치)였다고 전해지나, 《아즈마카가미》에는 이에 관한 직접적인 기록이 없어 후대에 덧붙여진 전설일 가능성이 높다.
문화적 영향
한가쿠 고젠은 우타가와 구니요시(歌川国芳)와 쓰키오카 요시토시(月岡芳年) 등 여러 우키요에(浮世絵) 화가들의 작품 소재가 되었다. 도모에 고젠, 시즈카 고젠, 호조 마사코 등과 함께 여성 무사 시리즈로 자주 묘사되었다. 현대에는 니가타현 다이나이시(胎内市)의 구마노 와카미야 신사(熊野若宮神社)에 도리사카 성 전투 800주년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