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후휘(夏侯徽, 211년~234년)는 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인물이다. 자는 원용(媛容)이며, 시호는 경회황후(景懷皇后)이다. 조위의 장수였던 하후상(夏侯尚)의 딸이며, 하후현(夏侯玄)의 여동생이다. 어머니는 위나라 장수 조진(曹眞)의 누이인 덕양향주(德陽鄉主) 조씨이다. 남편은 사마의(司馬懿)의 장남이자 이후 위나라의 섭정이 되는 사마사(司馬師)이다.
사마사와 결혼하여 딸 다섯 명을 두었으나 아들은 두지 못했다. 기록에 따르면 그녀는 고아(高雅)하고 박식하며 도량이 넓어, 사마사가 어떤 일을 도모할 때면 미리 계책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 사마사가 위나라에 충성하지 않는 인물임을 눈치채게 되었고, 한편 사마사 역시 그녀가 위나라의 외척 가문인 하후씨의 후손임을 이유로 그녀를 몹시 꺼렸다고 한다.
청룡 2년(234년)에 그녀는 24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진서》(晉書) 후비전(后妃傳)에는 그녀가 독약을 마시고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그 정황을 보아 사마사에 의한 독살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 다만 송대 사마광(司馬光)은 《자치통감고이》(資治通鑑考異)에서 당시 사마의가 명제(明帝)의 신임을 받고 있었고 불충의 흔적이 없었으므로 그 아들들이 딸을 독살할 이유가 없었다며 이 기록에 회의적인 견해를 표하기도 하였다. 또한 《삼국지》와 《자치통감》에는 청룡 2년 4월에 역병(疫病)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어, 일부 학자들은 그녀가 이 역병으로 사망했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그녀는 준평릉(峻平陵)에 안장되었다. 이후 사마사가 서진(西晉)의 추존 황제인 세종 경황제(世宗 景皇帝)로 추존됨에 따라, 서진 무제 사마염(司馬炎)이 태시 2년(266년)에 그녀에게 경회황후(景懷皇后)의 시호를 추증하였다.
주요 사료로는 《진서》 권31의 경회하후황후 열전(景懷夏侯皇后列傳)이 있으며, 《자치통감고이》에도 관련 논의가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