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임 아즈리엘 바이츠만(히브리어: חיים עזריאל ויצמן, 1874년 11월 27일~1952년 11월 9일)은 이스라엘의 초대 대통령이자 생화학자, 시온주의 지도자이다. 영문명은 카임 바이츠만(Chaim Azriel Weizmann)이다.
생애 초기
바이츠만은 1874년 당시 러시아 제국 영토였던 모탈(현재 벨라루스 브레스트주)에서 15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독일과 스위스에서 화학을 공부하였으며, 1901년부터 시온주의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1910년에는 맨체스터 대학교에서 연구를 수행하였다.
과학자로서의 업적
바이츠만은 미생물을 이용해 전분을 아세톤과 부탄올로 전환하는 'ABE 발효'(Acetone-Butanol-Ethanol fermentation) 공법을 개발하였다. 연구 과정에서 '클로스트리디움 아세토부틸리쿰'(Clostridium acetobutylicum)이라는 균주를 발견하였으며, 이 균주는 이후 '바이츠만 유기물'(Weizmann organism)로 불리게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은 화약 제조에 필수적인 아세톤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바이츠만이 개발한 발효 공법을 통해 옥수수 등을 원료로 아세톤을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영국의 전쟁 수행에 크게 기여하였다. 영국 정부는 이 공로로 그에게 대영제국 훈장을 수여하려 하였으나, 바이츠만은 이를 거절하고 대신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 건설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정치적 활동과 이스라엘 건국
바이츠만의 정치적 노력은 1917년 영국 외무장관 아서 밸푸어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의 유대인 국가 건설을 지지한다고 공식 발표한 '밸푸어 선언'(Balfour Declaration)을 이끌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후 그는 세계 시온주의 연맹(World Zionist Organization)의 총재를 역임하며 이스라엘 건국 운동을 주도하였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된 후, 바이츠만은 임시 대통령직을 맡았으며, 1949년 2월 17일 이스라엘의 초대 대통령으로 공식 선출되었다. 1951년 재선되었으나, 1952년 11월 9일 재임 중 레호보트(Rehovot)에서 7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기타
바이츠만의 이름을 따서 설립된 바이츠만 과학 연구소(Weizmann Institute of Science)는 이스라엘 레호보트에 위치한 세계적인 기초과학 연구 기관이다. 이 연구소는 1934년 다니엘 시프 연구소(Daniel Sieff Research Institute)로 처음 설립되었으며, 1949년 바이츠만의 이름을 따서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