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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오보춘

하오보춘(郝柏村, Hǎo Bócūn, 1919년 8월 8일 ~ 2020년 3월 30일)은 중화민국(대만)의 군인 출신 정치인이다. 자(字)는 보춘(伯春)이며, 중국 장쑤성(江蘇省) 옌청현(鹽城縣) 출신이다. 중화민국 육군 1급 상장(上將)으로, 최장기 참모총장(1981년~1989년)을 지냈으며, 이후 국방부장(1989년~1990년), 행정원장(1990년~1993년)을 역임했다.

생애 초기와 군 경력

하오보춘은 1935년 16세의 나이로 중앙육군군관학교(中央陸軍軍官學校) 12기 포병과에 입학하여 1938년 항일전쟁의 긴박한 상황 속에서 조기 졸업하였다. 이후 중국 항일전쟁에 참전하여 광저우 전역, 인도-미얀마 전선(중국원정군) 등에서 복무하였다. 1946년 육군대학을 졸업한 뒤 국공내전에도 참전하였다.

1958년에는 진먼(金門) 포격전(제2차 대만해협 위기, 823 포격전) 당시 보병 제9사단장으로서 대만 수호에 공훈을 세워 '운휘훈장'과 '호자영예기'를 수여받았다. 이후 육군 제3군 군장, 총통부 시위장(侍衛長, 1965년~1970년), 육군 제1야전군단 사령관, 국방부 작전참모차장, 육군 부총사령, 육군 총사령(1978년~1981년) 등을 거쳤다.

참모총장 및 정치 경력

1981년 12월 장징궈(蔣經國) 총통에 의해 국방부 참모총장에 임명되어 1급 상장으로 승진하였다. 참모총장 재임 기간은 8년으로, 이는 중화민국 역사상 최장 기록이다. 재임 중 한광(漢光) 연습을 기획하고, 대만 국산 전투기 IDF(경국호) 개발, 각종 미사일 및 차세대 해군 함정 연구 등 국방과학기술 현대화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1989년 12월 국방부장에 임명되었고, 1990년 6월에는 행정원장에 취임하였다. 행정원장 재임 기간 동안 대만의 전민건강보험(全民健保) 도입 추진, 금마(金馬) 지역 전시(戰地) 행정 종료, 국건 6개년 계획 수립 등에 관여하였다. 그러나 강경한 통치 스타일과 리덩후이(李登輝) 총통과의 갈등으로 인해 1993년 2월 사임하였다.

정치적 입장과 말년

1993년 중국국민당 부주석에 취임했으나, 리덩후이 총통 및 국민당 '주류파'와의 이념 차이로 1995년 국민당을 탈당(당적 박탈)하였다. 1996년 중화민국 최초의 직선제 총통·부총통 선거에서 린양강(林洋港)과 함께 무소속 '린하오배(林郝配)'로 출마하였으나 14.9%의 득표율로 3위에 그쳐 낙선하였다.

2005년 국민당이 그의 당적을 회복시켰고, 이후 국민당 중앙평의위원회 주석단 주석으로 활동하였다. 말년에는 장제스(蔣介石) 일기 해석서와 회고록 등 다수의 저서를 출간하였다. 2017년 기독교(개신교)로 세례를 받았다.

2020년 3월 30일, 뇌경색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타이베이에서 101세(만 10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장남 하오룽빈(郝龍斌)은 전 타이베이시장이자 국민당 부주석을 지냈다.

평가

하오보춘은 장제스, 장징궈, 리덩후이 3대 총통 시기에 걸쳐 중화민국 군부와 정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인물로 평가된다. 군인 출신 행정원장으로서 강경한 성향과 보수적 정치 입장으로 인해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으나, 대만의 국방 현대화와 전민건강보험 도입 등에 기여한 공로는 널리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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