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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 허씨

하양 허씨(河陽 許氏)는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을 본관(관향)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허씨 계열 중 김해 허씨, 양천 허씨, 태인 허씨와 함께 주요 본관으로 분류된다.

기원 및 시조

하양 허씨의 시조는 허강안(許康安)이다. 허강안은 가락국(금관가야) 시조 김수로왕의 왕비인 허황옥(허황후)의 33세손으로 전해진다. 고려 현종 때 호부낭장(戶部郞將)을 역임하였고, 말년에 호장(戶長)을 지내며 하주(河州) 자사가 되어 이 지역에 정착하였다. 이후 지명이 하주에서 하양으로 개칭됨에 따라 본관을 하양으로 하게 되었다.

본관 연혁

하양(河陽)은 고려 초에 하주(河州)라 불렸으며, 995년(성종 14)에 자사가 파견되었다. 1018년(현종 9)에 하양으로 개칭되었고, 1413년(태종 13)에 현감이 두어졌다. 1742년(영조 18)에는 화성현(花城縣)으로 개칭되었다가, 1895년 대구부 하양군, 1896년 경상북도로 이관되었다. 1914년 경산군에 편입되어 하양면이 되었고, 1973년 하양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95년 경산시와 통합되어 현재의 경산시 하양읍이 되었다.

분파

하양 허씨는 크게 다섯 개의 파로 나뉜다. 간숙공파(簡肅公派)는 허주(許周)를, 문경공파(文敬公派)는 허조(許稠)를, 부사공파(府使公派)는 허척(許倜)을, 정순공파(貞純公派)는 허지혜(許之惠)를, 판사공파(判事公派)는 허지(許止)를 파조로 한다.

주요 인물

허주(許周, 1359~1440)는 고려 말 문과에 급제하고 조선 초에 판한성부사에 이르렀으며, 시호는 간숙이다. 허조(許稠, 1369~1439)는 세종 때 좌의정에 올랐고 세종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문경이다. 허성(許誠)은 예문관대제학을 지냈고, 허후(許珝)는 예조판서와 좌찬성을 역임하였으나 계유정란 후 유배되어 생을 마쳤다. 허임(許任)은 조선 선조·광해군 때의 명의(名醫)로, 침구술의 대가로서 《침구경험방》을 저술하였다. 그 밖에 허계, 허관, 허석(독립운동가) 등이 있다.

과거 급제자

하양 허씨는 조선 시대에 문과 급제자 15명, 무과 급제자 8명, 생원시 및 진사시 급제자 다수를 배출하였다.

집성촌 및 인구

주요 집성촌은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부호리, 대곡리, 와촌면 용전리, 전라북도 진안군, 경상남도 거창군 남상면 등에 분포한다.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기준으로 전국에 20,608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관련 유적

경산시 하양읍 부호리에는 허조를 배향하는 금호서원(琴湖書院)이 있으며, 함양군에는 허주를 모신 정산서원(井山書院)이 있다. 또한 허후·허조 부자의 충절을 기리는 정려각이 부호리에 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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