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 및 설계 하쓰세는 일본의 해군력 증강 계획인 '육육함대 계획'에 따라 영국에서 주문 건조되었다. 영국의 암스트롱 휘트워스(Armstrong Whitworth) 조선소에서 건조되었으며, 1897년 1월 10일 기공, 1899년 1월 16일 진수, 1901년 1월 18일 취역했다.
하쓰세는 기준 배수량 약 15,000톤에 달했으며, 전장 133m, 폭 23.3m, 흘수 8.3m의 크기를 가졌다. 주포로 30.5cm(12인치) 포 4문과 부포로 15.2cm(6인치) 포 14문을 장착하여 당시로서는 강력한 화력을 자랑했다. 최고 속도는 18노트였고, 승무원은 약 741명이었다. 장갑은 주갑판 254mm, 포탑 254mm 등으로 방어력 또한 뛰어났다.
러일 전쟁과 침몰 취역 후 하쓰세는 일본 해군의 핵심 전력으로 활동했으며, 특히 러일 전쟁 발발과 함께 여순항 봉쇄 작전에 참여했다.
1904년 5월 15일, 하쓰세는 다른 일본 함선들과 함께 뤼순항 외곽에서 러시아 해군의 동향을 정찰하던 중 러시아 기뢰 부설함이 설치한 기뢰 지대에 진입했다. 하쓰세는 오전 11시 10분경 기뢰에 피격되어 추진력을 잃었고, 이어진 두 번째 기뢰 폭발로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결국 침몰하여 함장 유아사 타케오(湯浅竹雄) 대령을 포함한 승무원 496명이 전사했다. 하쓰세의 침몰은 러일 전쟁 초기 일본 해군이 입은 가장 큰 손실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