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산 쿠첵(Ḥasan-i Kūchik, 페르시아어: حسن كوچك, 약 1319년~1343년 12월 15일)은 14세기 일한국(Ilkhanate) 붕괴 이후 이란 지역에서 활동한 추판 왕조(Chobanids)의 왕자이자 실질적인 통치자이다. '쿠첵(Kūchik)'은 페르시아어로 '작은'이라는 뜻으로, 동시대의 경쟁자였던 자라이르 왕조의 하산 부주르그(Hasan Buzurg, '큰 하산')와 구별하기 위해 붙여진 명칭이다.
하산 쿠첵은 추판(Chupan)의 손자이자 티무르타시(Timurtash)의 아들로, 아나톨리아의 카이세리(Kayseri)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티무르타시는 1328년 맘루크 왕조에 의해 처형되었으며, 이로 인해 하산 쿠첵은 한동안 아버지의 적들을 피해 은거해야 했다. 이후 일한국의 마지막 강력한 칸이었던 아부 사이드(Abu Sa'id)가 사망한 뒤, 하산 쿠첵은 분열된 추판 부족을 규합하기 시작했다. 그는 아버지가 살아 있다고 주장하며 노예였던 카라 자리(Qara Jari)를 아버지로 위장시키는 전략을 사용하기도 했다.
1338년 하산 쿠첵은 반 호수 인근의 알라타크(Alataq) 지역에서 자라이르 왕조의 하산 부주르그를 격파하고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투에서 하산 부주르그가 내세운 명목상의 칸인 무함마드 칸이 처형되었고, 타브리즈 일대가 추판 세력의 수중에 들어갔다. 이후 하산 쿠첵은 아부 사이드의 여동생인 사티 벡(Sati Beg)을 명목상의 칸으로 옹립하고, 자신은 일한국의 실질적인 지배자로 군림하였다. 1340년에는 자라이르 왕조와 다시 대결하여 승리하고 하산 부주르그를 바그다드로 몰아내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추판 부족 내부의 결속력은 약했으며, 일부 부족원들은 자라이르 왕조로 변절하거나 내부 분쟁에 휘말렸다. 하산 쿠첵의 숙부인 수르간(Surgan)은 어머니 사티 벡에 대한 대우에 불만을 품고 하산 부주르그에게 귀순하기도 하였다. 또한 파르스 지역을 둘러싼 분쟁으로 추판 세력 내부에서도 갈등이 발생하였다.
하산 쿠첵은 1343년 말, 자신의 아내 이자트 말리크(Izzat Malik)에 의해 암살되었다. 암살 동기는 아내의 부정행위가 발각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후계자를 남기지 못한 채 사망한 이후, 추판 왕조의 영토는 말레크 아시라프(Malek Ashraf)와 야기 바스티(Yagi Basti), 수르간 등이 분할하였으며, 결국 말레크 아시라프가 단독 통치자가 되었다. 하산 쿠첵은 타브리즈에 매장되었다.
하산 쿠첵의 이름은 타브리즈의 오스타드-샤게르드(Ostād-Šāgerd) 모스크에 남아 있는 비문을 통해 후세에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