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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살라마

하산 살라마(حسن سلامة, Ḥasan Salāmah, 1913년~1948년 6월 2일)는 팔레스타인 출신의 군인으로, 1948년 팔레스타인 전쟁 당시 팔레스타인 성전군(Army of the Holy War)의 지휘관 중 한 명이었다. 아랍어 표기로는 하산 살라메(Hassan Salameh)로도 표기된다.

생애

하산 살라마는 1913년 오스만 제국 통치 하의 팔레스타인 쿨라(Qula)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영국 위임통치 당국과 이슈브(팔레스타인 유대인 공동체)에 맞서 싸운 무장 아랍 단체의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 1933년 자파 시위에 참여하였고, 1936년부터 1939년까지 이어진 팔레스타인 아랍 반란의 지도자로 활동했다. 반란 초기인 1936년 5월에는 리다(Lydda)-알람라(Al-Ramla)-자파(Jaffa) 지역의 지휘관으로 임명되어 철도 폭파, 전신주 파괴, 통신선 절단, 유대인 과수원 방화 등 여러 작전을 계획하고 수행했다.

이라크 및 제2차 세계대전 시기

팔레스타인 아랍 반란이 진압된 후, 1939년 10월 하산 살라마는 예루살렘의 무프티였던 아민 알후세이니와 함께 베이루트와 다마스쿠스를 거쳐 바그다드로 피신했다. 이라크에서 바그다드 군사대학을 졸업하였으며, 1941년 라시드 알리 알가일라니의 쿠데타와 그에 따른 영국-이라크 전쟁에 참여했다.

이후 그는 아민 알후세이니를 따라 나치 독일로 건너가 베를린에 체류하였다. 나치 독일의 외국 정보기관인 Amt VI의 특수 코만도 부대원으로 훈련을 받았으며, 1944년 10월 6일 밤, 독일 낙하산 부대원 3명 및 다른 팔레스타인 아랍인 1명과 함께 와디 켈트 상공에서 팔레스타인 지역에 낙하하는 작전(아틀라스 작전, Operation ATLAS)에 참여했다. 이 작전의 목적은 지역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에 자원과 무기를 공급하고 유대인 시설을 대상으로 한 사보타주 활동을 지휘하는 것이었다.

1947~1948년 팔레스타인 전쟁

1947년, 하산 살라마는 압드 알카디르 알후사이니와 함께 팔레스타인 성전군의 부지휘관으로 재등장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집트 사막에 은닉되었던 나치 독일의 무기를 회수하여 사용하였다. 1947년 12월 8일, 이 무기들을 사용하여 텔아비브의 하티크바 지구를 공격했으나, 하가나(유대인 방위 조직)가 사전 정보를 입수하고 대비하고 있던 상황에서 3시간 교전 후 약 100명의 사상자를 내고 후퇴했다.

아랍 연맹 군사위원회는 그를 리다(Lydda) 지역 지휘관으로 임명하였다. 그는 자신의 지역에서 알람라-자파 도로를 따라 활동을 조직했으며, 약 500명의 보스니아인 용병 부대가 그의 휘하에 합류했다. 이들 중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무슬림으로 구성된 무장친위대(Waffen-SS) 13사단(Handžar) 출신 참전 용사들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8년 4월 5일, 기바티 여단이 알람라 인근의 그의 지휘 본부 건물을 파괴하는 작전을 수행했으나, 하산 살라마는 사망을 면했다. 1948년 6월 2일, 라스 알에인(Ras al-Ein)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사망하였다.

가족

그의 아들 알리 하산 살라마(Ali Hassan Salameh, 1941년~1979년)는 검은 9월 단(Black September Organization)의 작전 책임자였으며, 1972년 뮌헨 올림픽 선수촌 인질 사건(뮌헨 학살)의 주도자로 알려져 있다.

평가

하산 살라마는 팔레스타인 민족주의 무장 투쟁의 초기 지도자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과의 협력 관계, 아틀라스 작전 참여, 1948년 전쟁에서의 군사 활동 등은 중동 현대사 연구에서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되는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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