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밀카르 바르카(라틴어: Hamilcar Barca, 기원전 275년경 ~ 기원전 228년)는 고대 카르타고의 군인이자 정치가로, 바르카 가문(Barcid family)의 지도자이며 제2차 포에니 전쟁의 명장 한니발의 아버지이다. 페니키아어(포에니어) 이름은 𐤇𐤌𐤋𐤒𐤓𐤕𐤟𐤁𐤓𐤒(Ḥamilqart Barqā)이며, '바르카(Barca)'는 '번개'를 의미하는 별칭으로 알려져 있다.
생애 및 군사 활동
하밀카르 바르카는 기원전 247년경 제1차 포에니 전쟁 당시 시칠리아의 카르타고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당시 로마 공화정은 시칠리아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었으나, 하밀카르는 소수의 용병 부대를 이끌고 섬 북서부에 기습 상륙하여 에르크테 산(현재 팔레르모 인근으로 추정)에 거점을 확보하고 로마군에 효과적으로 대항했다. 기원전 244년에는 에릭스 산으로 거처를 옮겨 게릴라전을 전개하였으며, 기원전 241년까지 시칠리아를 성공적으로 방어했다. 카르타고 함대가 로마에 패배한 후 하밀카르는 로마와 종전 조약을 체결했는데, 단 한 번도 로마군에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그의 부대는 항복 없이 카르타고로 철수할 수 있었다.
제1차 포에니 전쟁 종전 후 북아프리카에서 용병들이 일으킨 용병 전쟁(기원전 241~238년)에서 하밀카르는 카르타고군을 지휘하여 반란을 성공적으로 진압했다. 바그라다스 강 전투, 톱 전투 등에서 승리를 거두며 반군을 격파하였고, 이로 인해 카르타고 시민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이베리아 반도 원정
카르타고 내부의 정치적 반대파와 갈등을 겪은 하밀카르는 기원전 237년, 자신이 직접 훈련시킨 누미디아 기병대와 함께 히스파니아(오늘날 스페인)로 원정을 떠났다. 그는 뛰어난 군사적 재능과 외교술로 히스파니아 남부와 동부의 광대한 영토를 정복하여 바르카 가문의 영향력 아래에 두었다. 이 과정에서 은광을 확보하여 전쟁 배상금을 지불하고 군대를 유지할 재원을 마련하였다. 또한 아크라 레우케(현재 알리칸테로 추정)를 건설하여 카르타고의 거점으로 삼았다.
사망
기원전 228년, 하밀카르 바르카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오레타니 부족과의 전투 중 사망했다. 구체적인 사망 경위에 대해서는 여러 기록이 존재한다. 아피아노스에 따르면 말에서 떨어져 강에 익사했다고 하며, 디오도로스 시켈로스는 불이 붙은 소달구지에 의한 혼전 중 사망했다고 전한다. 폴리비오스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부족과의 전투에서 전사했다고 기록했다.
가족 및 유산
하밀카르는 세 아들(한니발, 하스드루발, 마고)과 세 딸을 두었다. 그의 사후 바르카 가문의 지도권은 사위인 '공정한 하스드루발'에게 계승되었고, 하스드루발이 암살된 후에는 한니발이 지도권을 계승하여 제2차 포에니 전쟁을 이끌었다. 하밀카르는 바르카 가문이 본국 카르타고와 거의 별개로 히스파니아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으며, 일부 역사가들은 그가 한니발이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구사한 전략의 기초를 마련한 인물로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