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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택 II 작전

하드택 II 작전(영어: Operation Hardtack II)은 1958년 미국이 네바다 핵 실험장(Nevada Test Site)에서 실시한 37차례의 핵실험 시리즈이다. 이 작전은 아거스 작전(Operation Argus) 시리즈에 이어졌으며, 누가 작전(Operation Nougat) 시리즈에 선행되었다.

배경

1958년 당시 미국과 소련 간의 핵실험 중단(모라토리엄) 협상이 임박함에 따라, 미국의 무기 연구소들은 협상 시작 전까지 가능한 많은 새로운 핵무기 설계를 서둘러 시험해야 했다. 실험의 최종 기한은 1958년 10월 31일 자정(00:00)으로 설정되었으며, 협상은 그날 시작될 예정이었다. 이에 따라 10월에만 29차례의 실험이 집중적으로 진행되었고, 그중 4차례는 마지막 날에 이루어졌다. 날씨 지연으로 자정 기한을 넘기면서 한 차례의 실험(애덤스)은 취소되었다.

하드택 II 작전 종료 후, 미국은 일방적인 핵실험 중단 조치를 발표했고, 소련은 11월 1일과 3일에 마지막 두 차례의 실험을 마친 후 이에 동참했다. 이후 1961년 9월 소련이 핵실험을 재개(차르 봄바 실험 포함)하면서 미국도 누가 작전으로 대응하게 된다.

실험 개요

하드택 II 작전에서는 총 37차례의 핵실험이 이루어졌으며, 실험 방식은 풍선(balloon), 건조 지표면(dry surface), 탑(tower), 지하 수직 갱도(underground shaft), 터널(tunnel) 등 다양했다. 최대 핵출력은 22킬로톤(TNT 환산)이었다.

각 실험은 미국의 지명(주로 뉴멕시코주의 카운티 및 지명)에서 이름을 따 명명되었으며, 오테로(Otero), 에디(Eddy), 모라(Mora), 타말파이스(Tamalpais), 로건(Logan), 블랑카(Blanca) 등이 대표적이다.

주요 실험

  • 타말파이스(Tamalpais): 1958년 10월 8일, 로렌스 방사선 연구소 주관으로 레이니어 메사(Rainier Mesa)의 U12b.02 터널에서 수행되었다. 0.072킬로톤의 위력을 가졌으며, 폭발 후 터널 내부에 심각한 방사능 오염과 구조적 손상이 발생했다. 이후 작업자들의 재진입 과정에서 수소 가스 폭발이 연이어 발생하여 3명의 작업자가 부상을 입었다.

  • 로건(Logan): 1958년 10월 16일, 터널 실험으로 5킬로톤의 위력을 기록했다. 무게 28.6kg, 크기 28cm×29cm의 소형 킬로톤급 장치로, 요격미사일(ABM) 탄두 실험이었으며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다.

  • 블랑카(Blanca): 1958년 10월 30일, 터널 실험으로 하드택 II 작전 최대 위력인 22킬로톤을 기록했다. W-47 주 장치의 대체 모형 실험이었으며 성공적으로 평가되었다.

  • 해밀턴(Hamilton): 1958년 10월 15일, 탑 실험으로 1.2톤의 극소형 위력을 기록했다. 데이비 크로켓(Davy Crockett) 무기 체계의 프로토타입 실험으로, 장치 무게는 불과 16kg(35파운드)였다.

  • 애덤스(Adams): 하드택 II의 마지막 실험으로 계획되었으나 불리한 바람 조건으로 인해 발사되지 못하고 취소되었다. 이미 풍선에 완전히 조립되어 발사 고도까지 올려진 상태였으나, 자정 기한을 넘기면서 장치는 지상으로 내려져 분해되었다.

의의

하드택 II 작전은 핵실험 모라토리엄 직전에 미국이 단기간에 걸쳐 대규모로 진행한 핵실험 시리즈로서, 다양한 신형 핵무기 설계의 안전성과 성능을 검증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특히 1점 안전 실험(one-point safety test)과 소형화된 핵탄두 개발이 두드러지며, 이는 이후 냉전 시기 미국 핵무기 개발의 기술적 기반을 제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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