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은 185개 이상의 민족언어학적 집단(ethnolinguistic group)이 거주하는 동남아시아의 대표적인 다민족 국가이다. 필리핀 통계청(PSA)의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필리핀의 인구는 약 1억 900만 명에 달하며, 이들 대부분은 오스트로네시아어족(Austronesian language family)의 말레이폴리네시아어파(Malayo-Polynesian)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한다.
주요 분류
필리핀의 민족 집단은 크게 세 가지 범주로 분류된다.
저지대 기독교화 집단(Lowland Christianized groups): 필리핀 인구의 약 86~87%를 차지하는 다수 집단으로, 스페인 식민 시기에 기독교로 개종한 저지대 해안가 민족들이다. 이들은 원주민(Indigenous)이나 모로(Moro) 집단으로 분류되지 않는 19개의 주요 민족언어학적 집단으로 구성된다. 대표적으로 타갈로그족(Tagalog), 세부아노족(Cebuano), 일로카노족(Ilocano), 힐리가이논족(Hiligaynon/Ilonggo), 비콜라노족(Bicolano), 와라이족(Waray), 카팜팡간족(Kapampangan), 팡가시난족(Pangasinense) 등이 있다.
모로족(Moro peoples): 민다나오 남부와 서부, 술루 제도, 팔라완에 거주하는 이슬람교 신봉 민족 집단으로, 전체 인구의 약 5%를 차지한다. 타우수그족(Tausug), 마긴다나오족(Maguindanaon), 마라나오족(Maranao), 사마족(Sama), 야칸족(Yakan), 바닝구잉이족(Banguingui) 등 최소 13개의 이슬람화된 민족언어학적 집단을 포함한다.
원주민 집단(Indigenous peoples): 1997년 필리핀 원주민 권리법(IPRA)에 따라 분류되는 토착민 집단으로, 약 142개 집단이 비무슬림 원주민으로 분류된다. 여기에는 루손 북부 코르디예라 산맥의 이고로트족(Igorot/Cordilleran peoples), 민다나오 동부의 루마드족(Lumad), 민도로섬의 망얀족(Mangyan), 팔라완의 팔라와노족(Palawano) 및 타그반와족(Tagbanwa), 그리고 전국에 분포하는 네그리토족(Negrito)이 포함된다.
주요 민족 집단 상세
타갈로그족(Tagalog): 필리핀에서 가장 널리 분포하는 민족 집단으로, 마닐라를 포함한 루손 남부 지역이 본거지이다. 타갈로그어는 1935년 필리핀의 공용어로 채택되었으며, 오늘날의 필리핀어(Filipino)는 사실상 타갈로그어를 기반으로 한다. 2019년 기준 전 세계적으로 약 2,380만 명의 사용자가 있다.
비사야족(Visayans): 세부아노, 힐리가이논, 와라이와라이 등 비사야어군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들의 총칭으로, 필리핀에서 가장 큰 민족 집단이다. 주로 비사야 제도와 민다나오 북부 및 동부 해안 지역에 거주하며, 인구는 약 3,3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일로카노족(Ilocano): 루손 북서부 일로코스 지역이 본거지이며, 필리핀에서 세 번째로 큰 민족 집단이다. 2020년 기준 약 875만 명의 인구를 기록했다. 대표적인 민속 문학으로 서사시 '비아그 니 람앙(Biag ni Lam-ang)'이 있다.
비콜라노족(Bicolano): 루손 남부 비콜 지방이 본거지이며, 다섯 번째로 큰 민족 집단이다. 고추와 코코넛 밀크를 활용한 요리로 유명하다.
카팜팡간족(Kapampangan): 루손 중부 평원(팜팡가주)이 본거지이며, 일곱 번째로 큰 민족 집단이다. 스페인 식민 시기에 용감한 군인으로 알려졌으며, 필리핀 혁명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다.
팡가시난족(Pangasinense): 루손 북서부 팡가시난주가 본거지이며, 여덟 번째로 큰 민족 집단이다.
원주민 및 부족 집단
이고로트족(Igorot): '산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루손 북부 코르디예라 행정구역에 거주한다. 본톡(Bontoc), 이발로이(Ibaloi), 이푸가오(Ifugao), 이스넥(Isnag), 칼링가(Kalinga), 칸카나에이(Kankanaey) 등 10개의 주요 민족언어학적 하위 집단으로 구성되며, 인구는 약 18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푸가오의 바나우에 계단식 논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루마드족(Lumad): 민다나오 동부에 거주하는 비이슬람계·비기독교계 원주민 집단으로, 마노보(Manobo), 수바논(Subanon), 만다야(Mandaya), 블란(B'laan), 티볼리(T'boli), 타사다이(Tasaday) 등 여러 민족을 포함한다.
네그리토족(Negrito): 필리핀에 가장 먼저 도착한 선(先)오스트로네시아 인구로, 약 3만 년 전부터 정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에타(Aeta), 아티(Ati), 바탁(Batak), 마만와(Mamanwa) 등이 포함되며, 2004년 기준 인구는 약 31,000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주로 외딴 산악 지역에 거주하며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망얀족(Mangyan): 민도로섬 내륙 지역에 거주하는 8개 원주민 집단의 총칭으로, 이라야(Iraya), 알랑안(Alangan), 타위부이드(Tawbuid), 부히드(Buhid), 하누누오(Hanunuo) 등이 포함된다. 총 인구는 약 28만 명으로 추정된다.
팔라완 원주민: 팔라완섬과 그 부속 도서에 거주하는 집단으로, 타그반와족(Tagbanwa), 팔라와노족(Palawano), 타우트바토족(Taaw't Bato), 몰복족(Molbog) 등이 있다. 타그반와족은 타본 원인(Tabon Man)의 후손으로 추정되며, 고유의 문자 체계를 보유하고 있다.
비토착민 및 혼혈 집단
필리핀에는 역사적 이주 배경을 가진 여러 집단이 존재한다. 중국계 필리피노(Chinese Filipino)는 전체 인구의 약 1.3%인 110만 명 이상으로 기록되나, 부분적 중국 혈통을 가진 인구는 전체의 약 20~27%에 달한다는 추정이 있다. 스페인계 필리피노(Spanish Filipino)는 18세기 인구 조사에서 전체 인구의 약 5%를 차지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이 외에도 미국계, 인도계, 일본계, 아랍계, 한국계 등 다양한 이주 배경 집단이 존재한다. 스페인 식민 시기에는 이들 간의 혼혈로 메스티소 데 상글레이(중국 혼혈), 메스티소 데 에스파뇰(스페인 혼혈), 토르나트라스(스페인-중국 혼혈) 등 다양한 혼혈 집단이 형성되었다.
언어와 유전학
필리핀의 민족 집단은 대부분 오스트로네시아어족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한다. 네그리토 집단 역시 표현형 및 유전적으로 다른 집단과 구별되지만, 주변 오스트로네시아계 언어를 사용한다. 2008~2009년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유전체 연구에 따르면, 평균적인 필리핀인의 유전자는 약 53% 동남아시아 및 오세아니아계, 36% 동아시아계, 5% 남유럽계, 3% 남아시아계, 2% 아메리카 원주민계로 구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