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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다미안

피터 다미안(Peter Damian, 라틴어: Petrus Damianus, 이탈리아어: Pietro 또는 Pier Damiani, 약 1007년 – 1072년 또는 1073년 2월 21일 또는 22일)은 11세기 이탈리아의 베네딕토회 수도사이자 추기경으로, 가톨릭교회의 개혁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는 1828년 9월 27일 교회 박사(Doctor of the Church)로 선포되었으며, 축일은 2월 21일이다.

생애

피터 다미안은 약 1007년경 이탈리아 라벤나(Ravenna)에서 크지만 가난한 귀족 가문의 막내로 태어났다. 일찍 고아가 된 그는 처음에는 형에게 입양되었으나, 형에게 학대를 받으며 돼지치기로 일해야 했다. 이후 라벤나의 대제사장이었던 또 다른 형 다미아누스(Damianus)가 그를 불쌍히 여겨 교육을 받게 하였다. 형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에 더한 그는 라벤나, 파엔차(Faenza), 파르마(Parma)에서 신학과 교회법을 공부하여 약 25세 무렵에는 파르마와 라벤나에서 유명한 교사가 되었다.

약 1035년경 세속적인 삶을 포기한 그는 구비오(Gubbio) 근처의 폰테 아벨라나(Fonte Avellana) 은수원에 들어갔다. 수도자로서의 그의 열정은 극심한 고행으로 이어져 건강에 문제가 생겼고, 심각한 불면증을 겪기도 하였다. 1043년에는 폰테 아벨라나의 원장(prio)이 되었으며, 이후 생애가 끝날 때까지 그 직위를 유지하였다.

교회 개혁 활동

피터 다미안은 은수원의 고립된 생활 속에서도 교회의 상황을 주시하며 개혁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는 시모니아(성직 매매)와 성직자들의 혼인(니콜라주의) 등 당시 교회의 부패를 강력히 비판하였다. 약 1050년에는 교황 레오 9세에게 《리베르 고모리아누스》(Liber Gomorrhianus)를 보내 성직자들의 부패를 신랄하게 고발하였다.

1057년 교황 스테파노 9세는 그를 추기경으로 임명하고 오스티아(Ostia)의 주교로 서임하였다. 이후 그는 교황의 특사(legate)로서 밀라노, 프랑스, 독일 등 여러 지역에서 교회 개혁과 분쟁 해결을 위해 활동하였다. 1069년에는 독일에서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가 아내 베르타와의 이혼을 포기하도록 설득하는 데 성공하였다.

사상과 저작

피터 다미안은 철학에 대해 적대적이기보다는, 철학을 포함한 자유 학예(liberal arts)가 종교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가장 유명한 저작인 《신의 전능에 관하여》(De Divina Omnipotentia)는 신의 전능성과 시간의 문제를 다룬 철학적 논쟁서로, 중세 신학 논쟁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의 저작은 67편의 논고, 편지, 설교, 기도문, 찬송가 등 방대한 분량에 이른다. 주요 저작으로는 《리베르 고모리아누스》, 《리베르 그라티시무스》(Liber Gratissimus, 시모니아 반대), 《도미누스 보비스쿰》(Dominus vobiscum), 《성 로무알드의 생애》(Vita Beati Romualdi) 등이 있다.

사후

피터 다미안은 1072년 또는 1073년 2월 파엔차 근처에서 열병으로 사망하였다. 그는 사후 성인으로 공경받았으며, 공식적인 시성 절차를 거치지는 않았으나 그의 공경은 사망 직후부터 여러 수도원에서 이어졌다. 1828년 교황 레오 12세에 의해 교회 박사로 선포되었다. 그는 불면증과 수면 장애로 고통받는 이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단테 알리기에리는 《신곡》의 《천국편》(Paradiso)에서 그를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의 위대한 전임자로 묘사하며 높은 하늘의 계층에 위치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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