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메이데이 사건(血のメーデー事件)은 1952년 5월 1일 일본 도쿄의 고쿄(황거) 앞 광장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여 발생한 유혈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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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1952년 4월 28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됨에 따라 일본은 연합군 총사령부(GHQ)의 점령 하에서 벗어나 주권을 회복했다. 그러나 주권 회복 직후인 5월 1일 노동절을 맞아 일본 노동조합, 학생 단체(전학련), 재일조선인 단체 등은 '파괴활동방지법' 제정 반대와 '미일 보안조약' 타도 등을 주장하며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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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 당시 일본 정부는 고쿄 앞 광장에서의 집회를 금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메이지 신궁 외원 등에서 집회를 마친 시위대 중 일부가 "인민 광장을 해방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금지 구역인 고쿄 앞 광장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이를 저지하려는 경찰관들과 시위대가 충돌하면서 사태는 폭력적으로 변했다. 시위대는 투석과 죽창 등으로 저항했고, 경찰은 최루탄을 사용하며 진압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권총을 발사하여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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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규모 사건의 결과로 시위대 측에서 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경찰과 시위대 양측을 합쳐 약 1,200명 이상의 부상자가 기록되었다. 현장에서는 약 1,200여 명의 시위 참가자가 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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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 경과 및 재판 사건 직후 일본 당국은 집단적 폭행 및 파괴 행위를 근거로 소요죄를 적용해 260여 명을 기소했다.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한 재판은 매우 장기화되었다. 1970년 도쿄 고등재판소는 시위대의 행위가 조직적인 소요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으며, 이후 대법원을 통해 일부 피고인에게 폭행 및 상해죄 등만 인정되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이 사건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사회운동과 공권력 집행 과정에서 발생한 가장 상징적인 유혈 충돌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