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불(Pierre Boulle, 1912년 2월 20일 ~ 1994년 1월 30일)은 프랑스의 소설가이다. 본명은 피에르 프랑수아 마리 루이 불(Pierre François Marie Louis Boulle)이며, 대표작으로 《콰이 강의 다리》(Le Pont de la rivière Kwaï, 1952)와 《혹성탈출》(La Planète des singes, 1963)이 있다. 두 작품 모두 이후 각각 영화로 제작되어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불은 프랑스 남부 아비뇽에서 태어나 가톨릭 신자로 세례받고 성장했으나, 후년에는 불가지론자가 되었다. 1933년 파리의 명문 공과대학인 에콜 쉬페리외르 데렉트리시테(Supélec)에서 전기공학 학위를 취득하였다. 1936년부터 1939년까지 말레이시아의 SOCFIN 고무 농장에서 기술자로 근무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불은 인도차이나의 프랑스군에 입대하여 참전했다. 프랑스 본토가 독일군에 점령된 이후에는 샤를 드 골을 지지하는 자유프랑스 운동에 가담하여 싱가포르에 주둔한 자유프랑스 임무부대에서 활동했다. 그는 피터 존 룰(Peter John Rule)이라는 가명으로 비밀 공작원으로 활동하며 중국, 버마,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지역의 저항 운동을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1943년 메콩강에서 비시 프랑스 세력에 체포되었으며, 2년 뒤 사이공에서 탈출에 성공했다. 전후에는 레지옹 도뇌르 슈발리에 훈장, 크루아 드 게르 훈장, 레지스탕스 메달을 수여받았다.
전쟁이 끝난 후 불은 잠시 말레이시아의 SOCFIN 농장에서 다시 일하다가 1949년 파리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집필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작품들은 주로 말레이시아와 인도차이나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콰이 강의 다리》는 연합군 포로들이 강제로 건설한 415km 길이의 이른바 '죽음의 철도'를 소재로 한 반(半)허구적 소설이다. 실제 콰이강 다리 건설 당시 약 1만 6천 명의 포로와 10만 명의 아시아인 강제노동자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소설은 1957년 데이비드 린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고, 아카데미 작품상을 포함한 7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흥미로운 점은 불이 영화의 각본상을 수상했지만 실제로 각본을 쓴 것은 칼 포먼과 마이클 윌슨이라는 두 작가였고, 이들이 매카시즘 시기의 블랙리스트에 올랐기 때문에 불이 각본가로 표기되었다는 사실이다. 이후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는 1984년에 포먼과 윌슨의 이름을 공식 수상 명단에 추가했다.
《혹성탈출》은 1963년에 출간된 SF 소설로, 지능을 갖춘 유인원이 인간을 지배하는 역전된 세계를 그린 작품이다. 말레이시아 농장 시절의 야생동물 관찰 경험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소설은 1968년 프랭클린 J. 샤프너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후 여러 편의 속편, 텔레비전 시리즈, 리메이크, 리부트 등으로 이어지는 대규모 미디어 프랜차이즈의 원작이 되었다. 불 자신은 이 소설이 영화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 밖에도 불은 《윌리엄 콘래드》(1950), 《말레이시아의 신성모독》(1951), 《사형집행인》(1954), 《백인들의 시련》(1955), 《카나시마의 정원》(1964), 《사진사》(1967) 등 다수의 소설과 단편집, 논픽션 작품을 발표했다. 1966년에는 자신의 전시(戰時) 경험을 기록한 회고록 《나의 콰이강》(My Own River Kwai)을 출간했다.
피에르 불은 1994년 1월 30일 파리에서 8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