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스페로 폰타나(Prospero Fontana, 1512년~1597년)는 이탈리아 볼로냐 출신의 화가로, 후기 르네상스와 매너리즘 시기에 활동하였다. 그는 프레스코화와 건축적 장식 표현에 능숙했으며, 작업 속도가 매우 빨라 동시대의 저명한 예술가들과 공동 작업을 자주 수행했다.
생애 및 경력
프로스페로 폰타나는 1512년 볼로냐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실비오 폰타나는 석공이었다. 그는 화가 인노첸초 디 피에트로 프란쿠치 다 이몰라에게서 미술을 배운 것으로 추정된다. 십대 시절 제노바에 있는 페리노 델 바가의 도리아 궁전 장식 작업에 조수로 참여했으나, 미술사학자들은 해당 장식 중 폰타나의 구체적인 기여를 명확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1550년대에 폰타나는 교황 율리오 3세의 초상화를 그렸으며, 교황청 궁정에서 연금을 받았다. 로마에 머무는 동안 타데오 주카리와 협력하여 빌라 줄리아(1553) 작업에 참여했다. 조르조 바사리와도 여러 차례 협업했으며, 바사리는 《미술가 열전》에서 폰타나가 건강 문제로 인해 프랑스 퐁텐블로 궁(1560)에서의 작업을 완수하지 못했다고 기록했다. 1563년부터 1565년까지는 피렌체의 베키오 궁전 장식에 참여했다.
1565년 폰타나는 피렌체의 드로잉 예술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1576년에는 종교 미술 개혁을 둘러싼 논의에서 가브리엘레 팔레오티 추기경의 자문을 받은 예술가 및 지식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참여했다.
경력 말기에 폰타나는 볼로냐에 미술 학교를 설립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제자로는 루도비코 카라치, 아고스티노 카라치, 로렌초 사바티니, 데니스 칼바르트가 있다. 그는 또한 볼로냐에서 예술가들 사이의 직업적 분쟁을 조정하는 중재자 역할을 맡기도 했는데, 당시 이 직책은 매우 명예로운 것이었다.
예술적 양식
폰타나의 초기 양식은 비교적 보수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이후 매너리즘을 대표하는 주요 예술가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점차 그 요소들을 자신의 양식에 도입했다. 그는 볼로냐 화파 초기의 대표적인 인물로 여겨지며, 그의 양식은 화가 파올로 베로네세와 비교되기도 한다. 폰타나는 의뢰받은 작업을 매우 빠르게 완성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당시 볼로냐의 미술사학자 카를로 체사레 말바시아(1616~1693)는 이러한 점을 들어 그를 부주의하고 비전문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주요 작품
- 《아기 세례자 요한과 함께한 성가정》(1545년), 산타 마리아 델 바라카노 교회, 볼로냐
- 《성 도미니코와 함께 서원하는 복자 디아나 안달로》(1545년), 산 도메니코, 볼로냐
- 《성 카타리나의 논쟁》(1551년), 산타 마리아 델 바라카노, 볼로냐
- 《율리오 3세》(1553년), 볼로냐 대학교 도서관
- 《동방박사의 경배》(1569년경), 볼로냐 국립 회화관
개인사
폰타나는 1539년 안토니아 데 보나르디스와 결혼했으며, 두 딸 에밀리아와 라비니아를 두었다. 에밀리아는 플로리아노 베르텔리와 결혼한 지 5년 만인 1568년에 사망했다. 폰타나는 살아남은 딸 라비니아에게 자신의 작업실에서 회화를 가르쳤으며, 라비니아 폰타나는 이후 여성 화가로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다.
폰타나는 1597년 볼로냐에서 사망했다. 그의 작품 상당수는 현재도 볼로냐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