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디 아길라(Freddie Aguilar, 본명: 퍼디낸드 패스큐얼 아길라, Ferdinand Pascual Aguilar)는 필리핀의 싱어송라이터이자 음악가이다. 1953년 2월 5일 필리핀 이사벨라주에서 태어났으며, 2025년 5월 27일 72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이슬람식 이름으로 압둘 파리드(Abdul Farid)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프레디 아길라는 필리핀 오리지널 필리핀 음악(OPM, Original Pilipino Music)의 상징적인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14세 때부터 자작곡을 쓰기 시작했으며, 전기공학을 전공했으나 학업을 마치지 않고 음악의 길을 선택하였다. 이후 거리 음악가와 포크 클럽, 바에서 연주하는 음악가로 활동하다가 1973년 마닐라의 호빗 하우스(Hobbit House)에서 공식적으로 공연을 시작하였다.
그의 대표작인 《아낙》(Anak, 1978)은 필리핀어로 '자식'을 뜻하는 곡으로, 부모에 대한 후회와 용서를 주제로 한다. 이 곡은 필리핀 음악 사상 최다 판매 기록을 세웠으며, 전 세계적으로 약 3,300만 장이 판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 1위를 기록하는 등 아시아와 서유럽 일부 지역에서 큰 인기를 얻었고, 23개 언어로 약 100여 개의 버전으로 녹음된 것으로 전해진다. 빌보드에 따르면 이 곡은 1980년대 세계 2위 히트곡으로 집계되기도 하였다.
아길라는 정치적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는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하였으며, 그의 《바얀 코》(Bayan Ko, '나의 조국') 연주는 1986년 피플 파워 혁명 당시 반정부 진영의 상징적인 노래로 널리 사용되었다. 이 곡은 원래 1928년 콘스탄시오 데 구스만이 작곡하고 시인 호세 코라손 데 헤수스가 작사한 곡으로, 아길라가 이를 재해석하고 일부 가사를 추가하여 불렀다.
그의 음악적 스타일은 포크, 마닐라 사운드, 핀요 록(Pinoy rock) 등으로 분류되며, 캣 스티븐스와 제임스 테일러 등 영미 포크 록 음악가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은 필리핀의 민족 정체성과 민족주의적 감정,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비판 등을 주제로 다루는 경우가 많았다.
개인적으로 아길라는 여러 차례 결혼과 이혼을 겪었으며, 슬하에 6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는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이후 기독교(보른 어게인) 신앙을 거쳤고, 2013년 이슬람교로 개종하여 압둘 파리드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 2018년에는 그의 자택에서 발생한 화재로 약 1,500만 페소 상당의 소장품과 악기, 수상 기록 등이 소실되기도 하였다.
2019년에는 필리핀 상원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그는 2008년 대한민국에서 열린 아시아 모델상 시상식에서 아시아 스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아길라는 2025년 5월 27일 케손시티의 필리핀 심장센터에서 다발성 장기 부전으로 사망하였다. 이슬람 의식에 따라 같은 날 마닐라 이슬람 묘지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