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더릭 윈즐로 테일러(Frederick Winslow Taylor, 1856~1915)는 미국의 기계공학자이자 경영 컨설턴트로, 과학적 관리법(scientific management)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그의 관리 체계는 테일러리즘(Taylorism)이라고도 불리며, 현대 경영학과 산업공학의 기초를 마련한 인물로 평가된다.
테일러는 1856년 3월 20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퀘이커 교도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변호사였고, 어머니는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온 청교도 후손이자 노예제 폐지 운동가였다. 하버드 대학교 입학 시험에 합격하였으나 시력 악화로 진학을 포기하고, 1874년 필라델피아의 펌프 제조 공장에서 기계 견습공으로 경력을 시작하였다. 이후 미드베일 제강 회사(Midvale Steel)에 입사하여 기계공, 기사장으로 승진하였고, 1883년 스티븐스 공과대학교에서 기계공학 학위를 취득하였다. 1893년부터 독립적인 경영 컨설턴트로 활동하였으며, 1898년부터 1901년까지 베들레헴 제강 회사(Bethlehem Steel)에서 근무하였다.
테일러는 공장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의도적으로 생산량을 제한하는 '은밀한 태업(soldiering)'의 관행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적 관리법을 개발하였다. 그의 방법은 작업을 기본 동작 단위로 분해하고, 불필요한 동작을 제거한 후 스톱워치로 시간을 측정하여 최적의 작업 방식을 도출하는 시간 연구(time study)를 핵심으로 한다. 또한 과학적·객관적인 표준 작업량을 설정하고, 목표 달성 시 더 높은 임금을 지급하는 차별적 성과급제(differential piece rate)를 도입하였다.
1911년 저서 《과학적 관리법의 원칙》(The Principles of Scientific Management)을 출간하였으며, 같은 해 루이스 브랜다이스(Louis Brandeis)가 그의 방법을 '과학적 관리(scientific management)'라고 명명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테일러의 사상은 생산성 향상과 경영 합리화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테일러를 '과학적 작업의 아이작 뉴턴'에 비유하며 높이 평가하였다. 한편으로는 노동자를 기계처럼 취급하고 인간성을 무시한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와 해리 브레이버만(Harry Braverman) 등은 테일러리즘이 노동자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억압하고 자본의 통제를 강화하는 도구라고 비판하였다.
테일러는 테니스 선수로서 1881년 US 오픈 남자 복식에서 우승한 이력도 있으며, 1900년 하계 올림픽 골프 종목에 출전하여 4위를 기록하였다. 1915년 3월 21일 폐렴으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