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츠 레셸(Frantz Reichel, 본명: François Étienne "Frantz" Reichel, 1871년 3월 16일 ~ 1932년 3월 24일)은 프랑스의 육상 선수, 럭비 선수, 스포츠 행정가, 언론인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레셸은 1896년 아테네에서 열린 근대 올림픽 제1회 대회에 육상 선수로 참가하였다. 400m 경기에서는 예선 3위에 머물러 결선에 진출하지 못했으며, 110m 허들 경기에서는 예선 통과 여부에 대해 기록이 명확하지 않다. 결승전에는 팀 동료 알뱅 레르뮈지오(Albin Lermusiaux)의 마라톤 경기를 지원하느라 출전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같은 대회에서 그는 프랑스 잡지 《벨로》(Vélo)의 기자로도 활동하였다.
1900년 파리 하계 올림픽에서는 프랑스 럭비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이후 1906년 국제 럭비 경기에서 프랑스 팀의 주장으로 선발되기도 하였다.
레셸은 프랑스 육상 선수로서 110m 허들(1891년), 크로스컨트리(1890년, 1891년), 1km 경보에서 프랑스 챔피언에 올랐으며, 1892년에는 1시간 달리기에서 16.611km의 국가 기록을 세웠다.
스포츠 경력 이후에는 행정가로 활동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프랑스 육상 스포츠 협회 연합(USFSA)의 재무 담당이자 1894년 소르본 회의의 수석 언론 담당관이었으며, 레셸은 이후 피에르 드 쿠베르탱의 뒤를 이어 USFSA의 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또한 프랑스 복싱 연맹(French Boxing Federation)을 창립하였고, 국제 하키 연맹(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Hockey, FIH)을 창립하여 1926년부터 1932년까지 회장을 지냈다. 프랑스 국가 올림픽 스포츠 위원회(CNOSF)의 위원으로도 활동하였으며, 1924년 파리 올림픽 조직위원장을 맡았다.
언론인으로서 그는 유럽 최초로 비행기에 탑승한 기자가 되었으며, 윌버 라이트(Wilbur Wright)의 승객 동반 비행 거리 기록을 도왔다. 국제스포츠언론인협회(Association Internationale de la Presse Sportive, AIPS)를 공동 창립하고 1924년부터 1932년 사망할 때까지 초대 회장을 역임하였다.
프랑스 럭비계에서 높은 존경을 받은 그는 사후에 그의 이름을 딴 유소년 럭비 선수권 대회인 '샹피오나 레셸'(Championnat Reichel)이 제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