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클로틸드(Clotilde de France)는 마리 아델라이드 클로틸드 그자비에르 드 프랑스(Marie Adélaïde Clotilde Xavière de France, 1759년 9월 23일~1802년 3월 7일)의 통칭으로, 프랑스 왕실의 공주이자 사르데냐 왕국의 왕비였다. 그녀는 프랑스 왕 루이 15세의 손녀이며, 도팽(왕세자) 루이와 마리아 요제파 폰 작센 사이에서 태어난 장녀였다. 프랑스 왕 루이 16세, 루이 18세, 샤를 10세는 그녀의 친오빠들이다.
클로틸드는 베르사유 궁전에서 태어나 마르상 백작부인 밑에서 여동생 마담 엘리자베트와 함께 자랐다. 청소년기 비만 때문에 궁정에서 '큰 부인'(Gros-Madame)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1775년, 오빠 루이 16세의 중개로 사르데냐 왕국의 왕세자였던 카를로 에마누엘레(훗날 카를로 에마누엘레 4세)와 대리 결혼식을 올렸으며, 이후 토리노로 가서 9월 30일 정식 결혼식을 치렀다. 슬하에 자녀는 없었으나 부부 사이는 원만했으며, 두 사람은 독실한 가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깊은 유대를 유지했다.
1796년 남편이 사르데냐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클로틸드는 사르데냐 왕비가 되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과 혁명 정부의 이탈리아 침공으로 왕국은 위기에 빠졌다. 1793년 오빠 루이 16세와 올케 마리 앙투아네트, 1794년에는 여동생 마담 엘리자베트가 처형당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후 그녀는 검소한 복장을 하고 장신구를 착용하지 않으며 극장과 오페라 관람을 중단하는 등 참회의 삶을 살았다. 1798년 프랑스군이 사르데냐 왕국을 침공하자 왕실은 사르데냐 섬으로 피신했으며, 이후 로마와 나폴리 등지에서 망명 생활을 이어갔다. 클로틸드는 망명 중에도 남편의 조언자이자 사실상의 최고 고문 역할을 수행하며 사르데냐 망명 정부의 외교적 업무를 처리했다.
1802년 3월 7일 나폴리에서 42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산타 카테리나 아 키아이아 성당에 안장되었다. 남편 카를로 에마누엘레 4세는 그녀의 죽음에 깊은 슬픔을 느껴 같은 해 6월 왕위를 동생에게 넘기고 퇴위했다. 클로틸드는 독실한 신앙심과 경건한 삶으로 가톨릭 교회의 인정을 받아 1808년 교황 비오 7세에 의해 '하느님의 종'(Servant of God)으로 선언되었으며, 이후 '가경자'(Venerable)로 공식 칭호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