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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연극

프랑스 연극은 중세 가톨릭 전례극에서 기원하여 후기 중세의 세속극, 17세기 고전주의 비극과 희극, 19세기 자연주의와 상징주의, 20세기 부조리극에 이르기까지 오랜 역사를 통해 발전해 온 프랑스의 연극 전통을 가리킨다. 프랑스 연극은 유럽 연극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몰리에르, 코르네유, 라신 등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극작가들을 배출하였다.

중세극

중세 프랑스 연극의 기원은 교회의 전례 대화와 트로푸스(tropus)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처음에는 크리스마스와 부활절과 관련된 의식의 단순한 극화였으나, 점차 수도원에서 야외로 옮겨졌고 라틴어 대신 프랑스어가 사용되었다. 12세기에는 라틴 전례극에 프랑스어가 삽입된 최초의 사례가 나타난다.

12~13세기 프랑스어 극작품으로는 『아담의 놀이』(Le Jeu d'Adam, 1150~1160), 장 보델의 『성 니콜라스의 놀이』(Le Jeu de Saint Nicolas), 뤼트뵈프의 『테오필의 기적』(Le Miracle de Théophile, 1265년경) 등이 있다. 소극(farce)의 기원에 대해서는 비전례적 기원설과 전례극의 영향설이 대립한다. 가장 오래된 프랑스 소극으로는 『눈먼 자와 소년』(Le Garçon et l'aveugle, 1266~1282)이 꼽힌다.

15세기에는 소극, 소티(sottie), 파스투렐(pastourelle), 신비극, 도덕극, 기적극, 수난극, 전원극 등 다양한 장르가 발달하였다. 극의 공연은 바소슈(Basoche), 앙팡 상 수시(Enfants sans Souci), 수난극 형제단(Confrérie de la Passion) 등의 전문 및 준직업 길드 조직에 의해 통제되었다.

르네상스 연극

16세기 초반의 공공 연극은 여전히 중세적 유산인 신비극, 도덕극, 소극, 소티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 1548년 파리 의회는 종교 분쟁의 심화를 우려해 수도에서 신비극 공연을 금지하였고, 이는 점차 고전 모방의 경향으로 이행하는 계기가 되었다.

인문주의 비극은 두 방향으로 전개되었는데, 하나는 성서에서 소재를 취한 성서 비극이었고, 다른 하나는 신화나 역사에서 소재를 취한 고대 비극이었다. 에티엔 조델의 『사로잡힌 클레오파트라』(Cléopâtre captive, 1553)는 호라티우스의 고전적 규칙을 따른 최초의 프랑스 창작 비극으로 평가된다. 또한 이 시기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아 비희비극(tragicomedy), 목가극(pastoral), 궁정 발레(ballets de cour) 등 새로운 형식이 등장하였다.

17세기 고전주의 연극

17세기 프랑스 연극은 피에르 코르네유, 몰리에르, 장 라신이라는 세 거장과 고전주의의 승리로 특징지어진다. 고전주의 연극은 질서, 명료성, 도덕적 목적과 좋은 취미의 개념을 중시하며, 아리스토텔레스와 호라티우스의 시학에 기초한 삼일치의 법칙(장소의 통일, 시간의 통일, 행동의 통일)을 따랐다. 또한 예의범절(bienséances)과 개연성(vraisemblance)의 원칙이 강조되었다.

1637년 코르네유의 『르 시드』(Le Cid)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으나,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공식 심판을 받으며 고전주의 규칙 정립의 계기가 되었다. 1660년대 이후 라신은 에우리피데스와 소포클레스의 그리스 신화에서 영감을 받아 정열과 의무 사이에서 갈등하는 귀족 인물들의 심리를 집중적으로 탐구하는 비극을 발표하였으며, 『앙드로마크』(Andromaque, 1667), 『페드르』(Phèdre, 1677) 등이 대표작이다.

몰리에르(장바티스트 포클랭)는 프랑스 희극에 현대적 형식을 부여한 극작가로, 『타르튀프』(Tartuffe, 1664), 『돈 주앙』(Don Juan, 1665), 『인간 혐오자』(Le Misanthrope, 1666), 『수전노』(L'Avare, 1668) 등에서 위선, 탐욕, 허영 등을 풍자하였다. 1680년에는 루이 14세의 명령으로 부르고뉴 극장과 게네고 극장이 합병되어 오늘날의 코메디 프랑세즈(Comédie-Française)가 탄생하였다.

18세기

18세기 프랑스 연극은 볼테르, 마리보, 디드로, 보마르셰 등 다양한 극작가들에 의해 발전하였다. 볼테르는 『외디푸스』(Œdipe, 1718)와 『자이르』(Zaïre, 1732) 등을 발표하였고, 마리보는 사랑의 심리와 감정을 세밀하게 탐구하는 희극을 창작하였다. 드니 디드로는 부르주아 비극을 도입하였으며, 보마르셰는 『세비야의 이발사』(Le Barbier de Séville, 1775)와 『피가로의 결혼』(La Folle Journée ou Le Mariage de Figaro, 1778)으로 희극에 혁신을 가져왔다. 장자크 루소는 『연극에 관한 달랑베르에게 보내는 편지』(Lettre à d'Alembert sur les spectacles)를 통해 연극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논쟁을 촉발하였다.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연극의 결정적 전환점은 1830년 빅토르 위고의 『에르나니』(Hernani) 초연이었다. 이 작품은 장소와 시간의 통일을 폐기하고 비극과 희극 요소를 혼합하며 운율의 자유를 획득하였다. 세기 중반 이후에는 사실주의 경향이 강화되었으며, 외젠 마랭 라비슈의 부르주아 소극, 에밀 오지에의 도덕극, 조르주 페이도우의 보드빌 등이 인기를 끌었다. 1887년 앙드레 앙투안은 자유극장(Théâtre Libre)을 창설하여 연극 자연주의를 실천하였고, 1890년 폴 포르는 예술좌(Théâtre d'Art)를 설립하여 상징주의 연극을 옹호하였다.

20세기

알프레드 자리의 『위뷔 왕』(Ubu Roi, 1896)은 세기 전환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전위극으로 평가된다.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가 연극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앙토냉 아르토는 잔혹 극장(Théâtre de la Cruauté) 개념을 제시하였다.

1920~1930년대에는 루이 주베, 샤를 뒤랑, 가스통 바티, 조르주 피토에프 등이 결성한 '카르텔'이 연출 예술의 발전을 주도하였다. 장 지로두, 장 아누이, 장폴 사르트르 등의 작품이 이 시기에 무대에 올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부조리 연극'(Théâtre de l'Absurde)이 등장하여 전통적 등장인물, 줄거리, 무대 장치를 해체하였다. 외젠 이오네스코, 사뮈엘 베케트, 장 주네, 아르튀르 아다모프 등이 이 계열의 주요 작가들이다. 1947년 장 빌라르가 아비뇽 축제를 창설하였고, 국립민중극장(TNP)의 발전에도 기여하였다. 1968년 5월 혁명 이후에는 아리안 므누슈킨의 태양극단(Théâtre du Soleil)이 집단 창작 개념을 발전시켰다.

20세기 후반 프랑스 연극의 주요 특징으로는 연출 예술의 확립, 연극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자각, 외국 연극과의 활발한 교류 등을 들 수 있다. 파리에는 50개 이상의 소극장이 운영되고 있으며, 지방 연극의 분산화와 국립 지방 연극 센터의 설립이 꾸준히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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