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코 마데로 (스페인어: Francisco Ignacio Madero González, 1873년 10월 30일 ~ 1913년 2월 22일)는 멕시코의 혁명가, 작가, 정치가로, 제33대 멕시코 대통령 (재임: 1911년 11월 6일 ~ 1913년 2월 19일)을 역임했다. 그는 멕시코 혁명을 촉발시킨 주요 인물 중 한 명으로, 포르피리오 디아스 대통령의 장기 독재를 종식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생애 초기 및 정치 활동 마데로는 코아우일라주 파라스 데 라 푸엔테의 부유한 대지주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미국과 프랑스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특히 경제학과 농업 분야에 관심을 가졌다. 귀국 후 가업에 참여하는 한편, 사회 개혁과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1900년대 초반부터 그는 포르피리오 디아스 대통령의 독재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특히 대통령의 장기 집권과 재선 관행을 비판했다.
1908년, 마데로는 《1910년 대통령 승계》(La sucesión presidencial en 1910)라는 책을 출간하여 디아스 대통령의 재선에 반대하고 민주적인 선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책은 멕시코 전역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마데로는 비재선주의 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는 반대 정당을 조직하고 1910년 대선에 출마했으나, 디아스 정권에 의해 투옥되었다.
멕시코 혁명의 시작과 대통령 취임 감옥에서 탈출한 마데로는 텍사스주 샌안토니오로 망명하여 "산 루이스 포토시 계획" (Plan de San Luis Potosí)을 발표했다. 이 계획을 통해 그는 1910년 11월 20일을 기해 디아스 정권에 대항하는 무장 봉기를 촉구했으며, 선거 부정 무효화와 토지 개혁을 약속했다. 그의 호소에 응하여 에밀리아노 사파타, 판초 비야 등 여러 혁명 지도자들이 봉기했고, 이는 멕시코 혁명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전국적인 혁명 세력의 압력에 직면한 포르피리오 디아스는 1911년 5월 사임하고 망명길에 올랐다.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 마데로는 압도적인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되어 1911년 11월 6일 취임했다.
대통령 재임 기간과 암살 마데로 대통령은 취임 후 민주적인 개혁을 추진하려 노력했으나, 그의 온건한 접근 방식은 급진적인 토지 개혁을 요구하는 농민 지도자들 (예: 사파타)의 불만을 샀고, 이전 정권의 잔재 세력과 보수 세력의 저항에도 직면했다. 그는 혁명 세력 내의 분열과 군부의 불만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
결국 1913년 2월, 빅토리아노 우에르타 장군이 이끄는 군부 쿠데타 (일명 "비극의 10일", Decena Trágica)가 발생하여 마데로 정부는 전복되었다. 마데로와 그의 부통령 호세 마리아 피노 수아레스는 체포되었고, 며칠 후 멕시코시티에서 암살당했다. 그의 죽음은 멕시코 혁명을 더욱 격렬하고 장기적인 내전으로 몰고 가는 계기가 되었다.
유산 프란시스코 마데로는 비록 짧은 재임 기간과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지만, 멕시코의 민주주의와 사회 정의를 향한 열망을 대변하며 멕시코 혁명의 불씨를 당긴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의 "비재선주의"와 민주적인 선거 원칙은 멕시코 현대 정치사의 중요한 유산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