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남문(豊南門)은 대한민국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에 위치한 조선 시대의 성문으로, 전주부성(全州府城)의 네 대문 가운데 남문에 해당한다. 1907년 도시계획으로 성곽과 나머지 성문이 모두 철거된 이후, 전주부성의 유일한 흔적으로 남아 있으며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 보물 제308호로 지정되었다.
풍남문은 조선 시대 전라감영이 있던 전주를 둘러싼 성곽의 남쪽 출입문으로 사용되었다. 전주부성은 고려 말기에 이미 축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공양왕 원년(1389년)에 전라관찰사 최유경이 전주부성과 함께 창건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 때 성곽과 성문이 모두 파괴되었고, 영조 10년(1734년)에 성곽과 성문을 다시 쌓으면서 이때 남문을 '명견루(明見樓)'라고 불렀다. 그러나 명견루는 영조 43년(1767년) 큰 화재로 소실되었으며, 이듬해 관찰사 홍낙인이 재건하면서 '풍남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풍남(豊南)'이라는 이름의 유래와 관련하여, '풍남'은 '풍패(豊沛)의 남쪽에 있는 문'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풍패는 중국 한나라 고조 유방이 태어난 곳으로, 조선왕조의 발원지인 전주를 이에 비유하여 '풍패지향(豊沛之鄕)'이라고 부른 데서 연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문은 이에 대응하여 '패북문'이라고 불렸다.
건축적 특징으로는, 아래층 내부에 전후 두 줄로 네 개씩 세운 기둥이 그대로 연장되어 위층의 모서리 기둥으로 사용되는 기둥 배치가 한국 문루 건축에서 희귀한 양식으로 지적된다. 문루는 1층이 앞면·옆면 각 3칸, 2층이 앞면 3칸·옆면 1칸이며, 지붕은 겹처마에 팔작지붕 형태이다. 성문 가운데에는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이 있다. 원래 풍남문 좌우에는 포루(砲樓)와 종각(鐘閣)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며, 1978년부터 3년간의 보수 공사를 거쳐 1982년에 옹성(甕城)과 함께 복원되었다.
풍남문은 조선 후기 문루 형식이 비교적 잘 보존된 사례로 평가되며, 인근에는 태조의 어진을 모신 경기전, 전주 이씨의 발원지인 오목대, 전주 객사 등이 위치해 있다. 현재 전주를 대표하는 상징적 문화유산으로, 관광 명소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