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쥔(溥儁, 1885년 1월 10일~1942년 1월 19일)은 중국 청나라 말기의 황족 종실이자 정치인이다. 성명은 아이신줴뤄 푸쥔(愛新覺羅溥儁)이며, 호는 산강초(山岡樵)이다. 청나라 도광제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이혁단군왕(已革端郡王)이다. 광서제의 6촌 조카에 해당한다.
푸쥔은 1891년 6세의 나이로 보국공(輔國公)에 책봉되었다. 이후 1898년 무술정변 이후 서태후(서희태후)의 정치적 계략에 따라 1899년 13세의 나이로 보경제(保慶帝)로 옹립되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00년 1월, 이홍장 등 대신들과 서양 열강의 반대에 부딪혀 폐위되었고 보국공으로 다시 강등되었다. 이때 당초 계획되었던 연호인 '보경(保慶)'은 실사용되지 못하고 사라졌다.
청나라가 멸망한 이후에는 중화민국 총통부 참의를 지내기도 했다. 1912년부터 1917년까지는 청나라 소조정(小朝廷)의 수장이었던 선통제(푸이)의 섭정을 맡았다. 1917년에는 장쉰 장군의 복벽 사건 당시 섭정 직권을 장쉰에게 위임하였다. 1925년부터 1926년까지 중화민국 총통부 참의를 역임한 뒤, 1928년부터 베이핑(베이징) 변두리의 탑왕부(塔王府)에서 칩거하였다.
푸쥔은 1942년 1월 19일, 탑왕부에서 만성 간부전증으로 향년 57세로 사망하였다. 그의 삶은 서태후의 정치적 계략과 청나라의 몰락이라는 격동기를 배경으로 하며, 말년에는 황족답지 않게 곤궁한 생활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