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위는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이자 제12대 군주(재위: 1908년 ~ 1912년), 그리고 만주국의 유일한 황제(재위: 1934년 ~ 1945년)이다. 본명은 아이신 교로 푸이 (愛新覺羅·溥儀, 만주어: ᠠᡳᠰᡳᠨ ᡤᡳᠣᡵᠣ Ɖᡠ ᡳ Aisin-Gioro Pu I)이며, 연호는 선통 (宣統)이다. 비극적인 현대 중국사의 격동기를 상징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생애
어린 시절과 즉위 푸위는 1906년 베이징에서 청나라 순친왕 짜이펑(載灃)의 아들로 태어났다. 서태후가 병세가 위독해지자, 그녀의 명령에 의해 1908년 2세의 나이에 황제로 지명되어 즉위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정치는 아버지 짜이펑이 섭정왕으로 수행했다.
청나라 황제로서의 퇴위 어린 나이에 황위에 올랐으나, 1911년 신해혁명이 발발하여 청나라의 통치 기반이 흔들렸다. 결국 1912년 2월 12일, 청나라는 멸망하고 푸위는 6세의 나이로 퇴위하게 된다. 퇴위 후에도 그는 외국의 지원금과 황실의 대우를 받으며 베이징 자금성에서 한동안 머물렀다. 1917년에는 장쉰(張勳)에 의해 잠시 복위되기도 했으나, 12일 만에 다시 폐위되었다.
만주국 황제 1924년 펑위샹(馮玉祥)에 의해 자금성에서 강제로 축출된 후 톈진(天津)으로 피신했다. 이때부터 그는 청나라 부흥을 꿈꾸며 일본 제국주의 세력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중국 침략의 일환으로 만주 지역에 괴뢰국인 만주국을 세웠고, 1932년 푸위를 만주국 행정원 최고 통치자인 집정(執政)으로 옹립했다. 이후 1934년에는 만주국 황제로 즉위하여 ‘강덕제(康德帝)’라는 연호를 사용했으나, 실권은 일본 관동군이 가졌다.
전후 생활 및 사상 개조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일본의 패망으로 끝나자, 푸위는 소련군에게 체포되어 시베리아로 이송되었다. 그는 도쿄 국제 군사 재판(극동 국제 군사 재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하여 일본의 만주국 침략과 자신의 역할을 증언했다. 1950년 중국으로 송환된 후,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의 '전범 관리소'에서 약 10년간 사상 개조 교육을 받았다.
말년 1959년 특사로 석방된 푸위는 베이징 식물원에서 정원사로 일하다가, 1964년에는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회 문사자료연구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는 등 일반 시민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는 자서전 『나의 전반생(我的前半生)』을 집필하여 격동의 삶을 회고했으며, 이는 훗날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The Last Emperor, 1987)의 원작이 되었다. 푸위는 1967년 베이징에서 신장암으로 사망했다.
평가 및 유산 푸위는 청나라의 몰락과 중화민국의 혼란,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에 이르는 20세기 중국사의 주요 사건들을 몸소 겪은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꼭두각시 황제로 전락하거나, 사상 개조를 통해 일반 시민으로 거듭나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그의 생애는 제국주의의 희생양이자 역사적 전환기의 비극적인 상징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