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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훈대덕

표훈대덕(表訓大德)은 신라 시대의 승려로, 화엄종의 개조인 의상(義湘)의 10대 제자 가운데 한 명이다. 생몰년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주로 경덕왕(재위 742~765) 대에 활동한 것으로 전해진다.

출전 및 문헌 기록

표훈대덕에 관한 가장 대표적인 기록은 『삼국유사(三國遺事)』 권제2 「경덕왕·충담사·표훈대덕(景徳王·忠談師·表訓大徳)」 조에 수록되어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표훈은 하늘의 상제(上帝)와 소통할 수 있는 신통력을 지닌 고승으로 묘사된다. 또한 『법계도기총수록(法界圖記叢髓錄)』, 『십구장원통기(十句章圓通記)』 등 의상계 화엄종의 주석서에도 그의 행적과 사상 일부가 인용되어 있다.

생애 및 활동

표훈은 문무왕 14년(674년)에 황복사(皇福寺)에서 의상으로부터 『화엄경』과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를 배웠다. 이때 의상이 설한 "부동한 나의 몸이 곧 법신 자체의 뜻"이라는 구절에 대해 표훈은 「오관석(五觀釋)」이라는 칠언절구의 시를 지어 바쳤고, 의상으로부터 법의 인가를 받았다. 「오관석」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我是諸緣所成法 諸緣以我得成緣 以緣成我我無體 以我成緣緣無性 (나는 여러 연으로 이루어진 존재, 여러 연이 나로써 연을 이루었네. 연으로 이루어진 나이기에 체가 없고, 나를 이룬 연에도 성이 없네.)

표훈은 김대성(金大城)과 교류하며 불국사(佛國寺)와 석굴암(石窟庵) 창건에 사상적 토대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대성이 760년경 황복사에서 표훈을 찾아가 화엄경을 배웠다는 기록이 전한다. 또한 676년에는 금강산에 신림사(神琳寺, 후의 표훈사)를 창건하였고, 678년에는 의상과 함께 부산 범어사(梵魚寺)를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표훈은 신라 화엄종이 지방(부석사 중심)에서 중앙(서라벌)으로 진출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된다. 8세기 서라벌에서는 황룡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연기(緣起) 계열과 황복사-불국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표훈 계열이 화엄학의 두 큰 흐름을 이루었다.

경덕왕 관련 설화

『삼국유사』에 수록된 설화에 따르면, 경덕왕은 아들이 없어 표훈에게 하늘의 상제께 아들을 점지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표훈이 천궁(天宮)에 올라가 상제에게 청하자, 상제는 "딸은 얻을 수 있지만 아들은 안 된다"고 하였다. 경덕왕이 다시 딸을 아들로 바꿔 달라고 간청하자, 상제는 "딸을 아들로 바꿀 수는 있으나 아들을 얻으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또한 상제는 표훈에게 "하늘과 인간은 본래 가벼이 왕래할 수 없는 것인데, 그대가 지나치게 자주 드나들며 천기를 누설하였으니 이후로는 다시 하늘에 오지 말라"고 명하였다. 경덕왕은 나라가 위태로워져도 아들을 얻겠다고 고집하였고, 이후 만월부인(滿月夫人)이 아들을 낳았으니 이가 곧 혜공왕(惠恭王)이다. 혜공왕이 즉위한 이후 신라에는 본격적인 혼란기가 시작되었다.

이 설화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표훈이 왕래했다는 '천궁'이 실제로는 석굴암(석불사)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해석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저술 및 발원문

표훈의 저술로는 위의 「오관석」이 현존하며, 2015년 공주 갑사(甲寺) 소조보살입상의 복장(腹藏) 유물 조사 과정에서 고려 말기(1388년)에 필사된 「표훈대덕발원문(表訓大德發願文)」이 발견되었다. 이 발원문은 70구 350자 분량의 오언구(五言句)로 구성되어 있으며, 계수문(稽首文), 발홍원(發弘願), 참회(懺悔), 홍원내용(弘願內容), 발원이(發願已) 등으로 구분된다. 학계에서는 이를 최초로 발견된 신라 고승의 저술로 추정하고 있다.

한편 일본에 전하는 『화엄경문의요결문답(華嚴經文義要決問答)』의 저자 표원(表員)과 표훈이 동일인물이라는 견해도 있었으나, 해당 문헌에 의상의 화엄론을 비판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동일인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도참서적과의 관련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세조 및 예종, 성종 대에 민간 소장이 금지된 도참서적(圖讖書籍)으로 『표훈삼성밀기(表訓三聖密記)』, 『표훈천사(表訓天詞)』 등 표훈의 이름을 가탁한 책들이 수거된 기록이 있다. 이는 표훈이 '하늘과 왕래했다'는 설화로 인해 그의 이름이 도참·방술 서적에 차용되었음을 보여준다.

사후 추모

표훈은 신라 시대의 대표적 고승 10인을 모신 흥륜사(興輪寺) 금당십성(金堂十聖)의 한 명으로 포함되었다. 금강산의 표훈사(表訓寺)는 그의 이름을 따서 창건된 사찰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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