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피포도상구균(학명: Staphylococcus epidermidis)은 그람 양성 구균으로, 포도상구균속(Staphylococcus)에 속하는 40여 종 중 하나이다. 학명 Staphylococcus는 '포도송이'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하였으며, epidermidis는 '표피(epidermis)의'라는 의미를 가진다. 과거에는 Staphylococcus albus(백색포도상구균)로도 불렸다.
발견 및 분류
1884년 독일의 세균학자 프리드리히 율리우스 로젠바흐(Friedrich Julius Rosenbach)가 황색포도상구균(S. aureus)과 구별하여 처음으로 명명하였다. 당시 두 균종이 각각 노란색과 흰색 집락을 형성하는 점에 착안하여 aureus(황금색)와 albus(흰색)라는 종명을 부여하였다. 이후 1908년 Winslow와 Winslow가 Albococcus epidermidis로 재분류하였고, 1916년 Evans에 의해 현재의 학명으로 확립되었다.
미생물학적 특징
표피포도상구균은 운동성이 없는 그람 양성 구균으로, 현미경상에서 포도송이 모양의 군집을 형성한다. 통성 혐기성(facultative anaerobe)으로 호기성 호흡과 발효 모두를 통해 생장할 수 있다. 카탈레이스(catalase) 양성, 응고효소(coagulase) 음성이며, 산화효소(oxidase) 음성이다. 요소분해효소(urease) 생산 양성이고, 젤라틴을 가수분해하지 못한다. 노보비오신(novobiocin)에 감수성을 보여, 같은 응고효소 음성이지만 노보비오신 내성인 부생성포도상구균(S. saprophyticus)과 감별된다. 혈액한천배지에서 용혈을 일으키지 않으며, 배양 후 직경 1~2mm의 흰색 볼록한 집락을 형성한다.
정상 세균총으로서의 역할
표피포도상구균은 건강한 인간 피부의 정상 세균총(normal flora)을 구성하는 주요 미생물 중 하나이다. 점막에도 존재하나 피부에서 더 흔하게 발견된다. 정상 상태에서는 비병원성이며, 건강한 피부 장벽 유지, 상처 치유, 병원성 미생물의 피부 정착 방지, 면역 조절 등에 기여하는 공생균(commensal)으로 기능한다. 특히 피부 각질세포에서 보호성 세라마이드(ceramide) 생성을 촉진하여 피부 장벽 항상성 유지에 관여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코 점막에 존재하는 표피포도상구균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SARS-CoV-2)의 세포 진입 인자인 ACE2와 TMPRSS2의 발현을 감소시켜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저항성을 높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서울대학교병원 연구팀, 2023).
병원성 및 감염
표피포도상구균은 일반적으로 건강한 사람에게는 질병을 일으키지 않으나, 면역 체계가 손상된 환자에게는 기회감염성 병원체(opportunistic pathogen)로 작용할 수 있다. 주요 감염 경로는 의료용 이식 장치(카테터, 인공 관절, 인공 심장 판막, 중추신경계 션트 등)를 통한 침입이다. 이러한 장치 표면에 생물막(biofilm)을 형성하여 항생제와 숙주 면역 반응으로부터 균을 보호하는 것이 주요 독력 인자(virulence factor)로 알려져 있다.
표피포도상구균은 원내 감염(nosocomial infection)의 주요 원인균 중 하나이며, 특히 다음과 같은 질환과 연관된다:
- 중심정맥관 관련 혈류 감염
- 인공 판막 심내막염(prosthetic valve endocarditis)
- 인공 관절 감염
- 뇌실-복강 션트 감염
- 신생아 패혈증
항생제 내성
표피포도상구균은 높은 수준의 항생제 내성을 보인다. 메티실린 내성은 특히 광범위하여 병원 분리주의 75~90%에서 메티실린 내성이 보고된다. 리파마이신, 플루오로퀴놀론, 겐타마이신, 테트라사이클린, 클린다마이신, 설폰아마이드 등 여러 계열의 항생제에 내성을 나타내는 다제내성(multidrug resistance) 균주가 흔하다. 이러한 내성으로 인해 치료에는 반코마이신(vancomycin)이 일차 선택 약제로 사용되며, 필요에 따라 리팜핀(rifampin)이나 아미노글리코사이드(aminoglycoside)가 병용된다.
생물막 형성
표피포도상구균의 가장 중요한 독력 인자는 의료용 플라스틱 장치 표면에 생물막을 형성하는 능력이다. 생물막 형성은 다당류 세포간 접착소(polysaccharide intercellular adhesin, PIA)라는 세포외 물질에 의해 매개되며, 이 물질은 균들이 서로 부착하여 다층 구조의 생물막을 형성하도록 한다. 생물막 내부의 세균은 대사 활동이 감소하고 항생제 확산이 저해되어 항생제 치료가 효과적이지 않게 된다. 따라서 생물막이 형성된 감염의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은 감염된 의료 장치를 제거하거나 교체하는 것이다.
여드름과의 연관성
표피포도상구균은 여드름 병변 내부에서 여드름균(Cutibacterium acnes)과 함께 자주 발견된다. 두 균종은 상호작용하며, 표피포도상구균이 생물막을 형성하면 여드름균이 집락을 형성하기 쉬운 혐기성 환경이 조성된다. 한편 표피포도상구균은 톨유사수용체 2(TLR2) 단백질 생성을 감소시켜 피부 염증을 완화하는 방향으로도 작용할 수 있어, 여드름 병리에서의 역할은 복합적이다.
발견 환경
표피포도상구균의 일부 균주는 내염성이 매우 높아 해양 환경에서도 발견된다. 방글라데시 벵골만 세인트마틴섬의 해면동물(Cliona viridis)에서 내염성 균주가 분리·확인된 바 있다.
진단 및 식별
선택배지에서의 집락 형태, 광학현미경 관찰, 카탈레이스 검사, 슬라이드 응고효소 검사 등이 일차적 동정 방법으로 사용된다. 데스페록사민(desferroximine) 감수성 검사가 다른 포도상구균과의 감별에 유용하며, 최근에는 정량적 PCR(qPCR)과 같은 분자생물학적 기법이 신속 동정에 활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