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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존 태글리아부

개요

폴 존 태글리아부(Paul John Tagliabue, 1940년 11월 24일 ~ 2025년 11월 9일)는 미국의 법조인이자 스포츠 행정가로, 1989년부터 2006년까지 내셔널 풋볼 리그(NFL)의 커미셔너로 재직한 인물이다.

생애

태글리아부는 뉴저지주 저지시티에서 배관공이었던 부친 아래 세 아들 중 한 명으로 성장하였다. 세인트 마이클 고등학교 재학 시절 농구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1959년 조지타운 칼리지로부터 장학금을 받아 입학하였다. 대학 농구팀에서 활약했고 마지막 학년에는 팀 주장으로 선출되었다. 해당 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하여 문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62년부터 뉴욕대학교 로스쿨에서 법학을 전공하였으며, 로리뷰의 공동 편집자로 활동했다. 1965년에는 우등으로 법무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졸업 후 미국 청구 법원의 판사 사무실에서 근무를 시작했고, 이후 국방부로 자리를 옮겼다. 1969년에는 법무법인 코빙턴 & 벌링에 합류하였다.

그는 곧 NFL의 주요 법률 업무를 담당하기 시작했으며, 파트너로 승진한 뒤에는 리그와의 협력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였다. 오클랜드 레이더스의 로스앤젤레스 이전과 관련한 법적 분쟁, USFL의 NFL 상대 독점금지 소송, 1987년 선수 파업 협상 등 여러 중대한 사안에서 리그 및 당시 커미셔너 피트 로젤을 대변하였다.

NFL 커미셔너 재임

1989년 로젤 커미셔너의 사임 이후 후임 선출 과정에서 여러 차례 투표가 진행된 끝에, 1989년 10월 26일 제12차 투표에서 태글리아부가 커미셔너로 선출되었고, 11월 5일 공식 취임하였다.

취임 직후인 1990년 3월, 그는 36억 달러 규모의 4년간 TV 중계권 계약을 성사시켰는데, 이는 당시 기준으로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방송 계약이었다. 또한 리그 확장을 추진하여 1995년 잭슨빌 재규어스와 캐롤라이나 팬서스의 참여를 이끌었고, 2002년에는 휴스턴 텍산스가 추가되어 리그 확장이 이루어졌다. 그의 재임기에는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의 볼티모어 이전 과정도 조정되었다.

태글리아부는 리그의 국제적 홍보 확대를 위하여 전임 로젤이 추진하던 국제화 정책을 이어받았다. 그 결과 1991년 '월드 리그 오브 아메리칸 풋볼'이 출범하였으며, 이는 후에 NFL 유럽으로 명칭이 변경되어 2007년까지 운영되었다. 또한 프리시즌 해외 경기의 수 역시 확대되었다.

1993년에는 NFL 선수노조와의 7년간 유효한 단체협약 체결에 성공하였다. 해당 협약에는 선수 연봉뿐 아니라 연금 제도, 의료 지원, 은퇴 선수 지원 등이 포함되었다. 이 협약과 2006년 체결된 후속 계약을 통해 그는 커미셔너 재임 기간 동안 노동 분쟁 없이 리그 운영의 안정성을 유지하였다.

그의 재임기 동안 20개의 신설 경기장 건립이 추진되었으며, NFL 네트워크가 창설되었다. 또한 리그 차원에서 인터넷을 활용한 새로운 마케팅 및 운영 체계 구축이 이루어졌다.

2006년 3월, 그는 사임 계획을 발표하였고, 같은 해 9월 1일 로저 구델에게 커미셔너 직을 공식 이양하였다.

퇴임 이후

퇴임 후 그는 다시 코빙턴 & 벌링에서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2012년부터 2021년 사이 여러 권위 있는 평가 기관들로부터 스포츠 분야 최고 변호사 중 한 사람으로 선정되었다. 2020년에는 프로 풋볼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그는 1965년부터 사망 시까지 챈들러 민터와 혼인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두 자녀를 두었고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에 거주하였다.

2025년 11월 9일, 태글리아부는 메릴랜드주 체비체이스에 있는 자택에서 심부전과 파킨슨병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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