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프 아타나즈 두메르(Joseph Athanase Doumer), 통칭 폴 두메르(Paul Doumer, 1857년 3월 22일~1932년 5월 7일)는 프랑스의 정치인으로, 프랑스 제3공화국의 제14대 대통령(1931년 6월 13일~1932년 5월 7일)을 역임했다.
두메르는 프랑스 오베르뉴 지방 캉탈주 오리야크에서 수수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12세부터 배달원으로 일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판화 노동자로 일하면서 학업을 병행하여 수학 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교사가 되었다. 망드(Mende)와 레미르몽(Remiremont) 등에서 수학 교사로 근무한 후 언론인으로도 활동했다.
1888년 급진파(급진당) 소속으로 엔주(Aisne)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재정 전문가로 명성을 얻어 1895년 레옹 부르주아 내각에서 재무장관으로 임명되었으며, 누진소득세 도입을 추진했으나 상원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1897년부터 1902년까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총독을 지냈다. 재임 기간 동안 재정을 쇄신하고 증세 정책을 시행했으며, 철도(트란스앵도시누아 철도, 윈난성 철도) 등 대규모 인프라 사업을 추진했다. 하노이의 롱비엔 다리(Long Biên Bridge)는 그가 총독 시절 건설된 것으로, 1954년까지 '폴 두메르 대교'로 불렸다. 이러한 활동으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아버지'로 묘사되기도 한다.
귀국 후 1905년 하원의장을 지냈고, 1906년 대통령 선거에 보수파 후보로 출마했으나 아르망 팔리에르에게 패배했다. 1910년 총선에서 패배한 후 1912년 코르시카에서 상원의원에 당선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파리 군정 민간내각을 이끌었고, 이후 내무장관과 전쟁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전쟁 중 다섯 아들 중 네 명을 잃었다.
전후 1921년과 1925년 두 차례에 걸쳐 재무장관을 재임하며 재정 재건에 힘썼다. 1927년 상원의장에 취임했으며, 1931년 5월 13일 대통령 선거에서 아리스티드 브리앙을 꺾고 프랑스 공화국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대통령으로서 그는 프랑스의 군사력 강화와 국민 통합을 주장했다.
1932년 5월 6일, 파리 로트실트 회관에서 열린 '종군 작가 구제를 위한 도서판매회'에 참석하던 중, 러시아계 이민자 파벨 고르굴로프(Paul Gorguloff)의 총격을 받아 중상을 입었고, 다음 날인 5월 7일 오전 4시 37분 사망하였다. 이로써 프랑스 공화국 역사상 재임 중 암살된 대통령이 되었다. 암살범 고르굴로프는 단두대 처형형을 선고받아 1932년 9월에 집행되었다.
저서로 《L'Indo-Chine française》(1904), 《Le Livre de mes fils》(1906)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