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토스 왕국(그리스어: Βασίλειον τοῦ Πόντου, 라틴어: Regnum Ponti)은 고대 헬레니즘 시대 소아시아 북부, 흑해(폰토스 에우크시노스) 연안 지역에 존재했던 왕국이다. 기원전 3세기 초반 미트라다테스 1세 크티스테스(Mithridates I Ctistes)에 의해 건국되었으며, 기원전 63년 로마 공화정의 폼페이우스에 의해 정복되어 멸망할 때까지 약 250여 년간 존속하였다.
역사적 배경과 건국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사후 디아도코이 전쟁의 혼란기 속에서, 페르시아 귀족 가문 출신인 미트라다테스 1세가 파플라고니아와 폰토스 지역을 기반으로 세력을 확장하여 기원전 281년경 독립 왕국을 선포하며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페르시아계 왕조의 전통과 헬레니즘 문화가 혼재된 형태를 띠었다.
전성기와 미트라다테스 6세 폰토스 왕국은 제6대 왕 미트라다테스 6세 에우파토르(Mithridates VI Eupator, 재위 기원전 120년~기원전 63년) 치하에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그는 흑해 연안의 그리스 식민 도시들을 복속시키고, 소아시아 중부와 크림 반도까지 세력을 확장하여 로마 공화정의 동방 진출에 맞서는 최대 강국으로 부상하였다.
로마와의 전쟁과 멸망 미트라다테스 6세는 로마와 세 차례에 걸친 미트라다테스 전쟁(제1차: 기원전 89~기원전 85년, 제2차: 기원전 83~기원전 81년, 제3차: 기원전 75~기원전 63년)을 치렀다. 초기에는 소아시아와 그리스 지역에서 로마군을 격파하며 선전하였으나, 루쿨루스와 폼페이우스 등 로마의 유능한 장군들의 반격으로 점차 밀리게 되었다. 기원전 63년 폼페이우스에게 결정적으로 패배한 미트라다테스 6세는 자결하였고, 폰토스 왕국은 로마의 속주(비티니아 에트 폰투스 속주 등)로 편입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정치와 문화 폰토스 왕들은 페르시아계 왕조의 정통성을 내세우면서도, 그리스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그리스식 도시 국가(폴리스) 체제를 도입하는 등 헬레니즘 군주국의 면모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수도는 초기 아미소스(Amisos, 현 삼순) 등을 거쳐 시노페(Sinope, 현 시노프)로 옮겨졌다. 경제적으로는 흑해 연안의 목재, 곡물, 어업 자원과 내륙의 광물 자원을 바탕으로 번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