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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찹힐 전투

폭찹힐 전투(Battle of Pork Chop Hill)는 한국전쟁(6·25전쟁) 말기인 1953년 3월부터 7월까지 경기도 연천군 천덕산 일대의 255m 및 300m 고지군에서 유엔군과 중국인민지원군(중공군) 사이에 벌어진 고지전이다. '폭찹힐(Pork Chop Hill)'이라는 명칭은 해당 고지의 지형이 돼지고기 폭찹(포크찹) 모양과 비슷하다는 데서 유래한 미군 측의 코드명이다. 중국 측에서는 이 전투를 '석현동북산 전투(石峴洞北山戰鬥)'라고 부른다.

배경

1953년 초, 한국전쟁의 정전 협상이 진행 중이던 상황에서 양측은 협상장에서의 발언력을 높이기 위해 군사적 충돌을 병행하였다. 폭찹힐은 유엔군 주저항선(MLR) 전방에 위치한 여러 전초 고지 중 하나로, 미군 제7보병사단이 방어를 맡고 있었다. 반대편에는 중국인민지원군 제47군 예하 제141사단과 제23군 예하 제67사단이 배치되어 있었다.

전투 경과

이 전투는 크게 두 차례의 주요 교전으로 나뉜다.

1차 전투(1953년 4월 16일~18일): 1953년 3월 23일 인근의 '올드 발디(Old Baldy)' 고지가 중공군에 함락된 이후, 폭찹힐은 삼면에서 위협을 받게 되었다. 4월 16일 자정 무렵, 중공군 제201연대 1개 대대가 기습 공격을 감행하여 고지를 빠르게 장악했다. 이에 미군 제31보병연대의 K중대와 L중대가 반격에 나섰고, 이후 제17보병연대 병력이 추가 투입되어 치열한 고지 쟁탈전이 전개되었다. 4월 18일 새벽까지 이어진 격전 끝에 유엔군은 고지를 탈환하는 데 성공하였다. 미군 측 기록에 따르면 이 전투에서 미군 104명이 전사하고 373명이 부상당했다.

2차 전투(1953년 7월 6일~11일): 정전 협상이 막바지에 이른 7월 6일 밤, 중공군이 동일한 전술로 폭찹힐을 다시 공격했다. 이번 전투는 장마 기간 중 이틀간의 폭우 속에서 진행되어 보급과 후송이 극도로 어려웠다. 양측은 수차례에 걸쳐 고지를 두고 공방을 벌였으나, 7월 11일 유엔군 제1군단 사령부는 전략적 가치가 제한적이라고 판단하고 고지 포기를 결정, 미군 제7사단은 철수하였다. 이 전투에서 미군은 243명 전사, 916명 부상, 9명 포로의 피해를 입었다. 중공군의 피해 규모는 자료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미군 측은 약 1,500명 전사, 4,000명 부상으로 추정하였다.

결과 및 의의

1차 전투는 유엔군의 승리, 2차 전투는 중공군의 승리로 기록되었다. 폭찹힐은 전략적·전술적 가치가 낮은 고지임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인명 피해가 발생하여, 미국 내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이 전투가 끝난 지 약 2주 후인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 정전 협정이 체결되었다.

대중문화

미국에서는 이 전투를 배경으로 한 동명의 영화 《Pork Chop Hill》(1959년)이 제작되었으며, 그레고리 펙(Gregory Peck)이 주연을 맡았다. 이 영화는 S.L.A. 마셜(S.L.A. Marshall)의 동명 저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로 인해 미국에서는 폭찹힐 전투가 한국전쟁의 대표적인 고지전 중 하나로 널리 인식되고 있다.

참전국

유엔군 측에서는 미군 제7보병사단을 주축으로, 대한민국 국군, 태국군, 에티오피아군, 콜롬비아군 등이 참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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