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른시그투나(노르웨이어: Fornsigtuna)는 스웨덴 시그투나(Sigtuna)의 서쪽 약 4km 지점, 하투나(Håtuna) 교구에 위치한 장소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포른(Forn)"은 고대 노르드어로 "옛(Old)"을 의미하므로, "옛 시그투나" 또는 "구(舊) 시그투나"로 해석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이 장소가 대부분 잊혀졌으나, 노르드 신화에서 배경으로 여러 차례 등장한다.
지리적 위치 및 명칭
포른시그투나는 스웨덴 스톡홀름 주(州)에 속한 시그투나 시의 서쪽, 멜라렌 호수(Lake Mälaren) 연안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장소는 17세기 이후로는 시그닐즈베리(Signhildsberg)라는 저택(마노르)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역사적으로는 국왕 소유 영지(Uppsala öd)에 속했던 곳이다.
문헌 기록
《헤임스크링글라(Heimskringla)》에 수록된 《윙글링 일족의 사가(Ynglinga saga)》 제5장에서 스노리 스투를루손(Snorri Sturluson)은 오딘(Odin)과 에시르(Æsir) 일족이 스웨덴 땅에 처음 도래했을 때 상륙한 곳이 포른시그투나라고 기록하였다. 또한 해적 쇨베(Sölve)가 포른시그투나에 와서 스웨덴 왕위를 주장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성왕 올라프 사가(Saga of St. Olaf)》에서는 노르웨이 왕 올라프 2세(올라프 하랄손)가 포른시그투나에 상륙한 것으로 묘사된다.
《오르바르오드의 사가(Örvar-Odd's saga)》에서는 햘마르(Hjálmar)가 죽어가며 "시그툰의 고향(Sigtún)"을 그리워하는 구절이 등장한다.
삭소 그라마티쿠스(Saxo Grammaticus)의 《데인인의 사적(Gesta Danorum)》 제8권에서는 브라발라 전투(Battle of Bråvalla)에 참여한 윙글링 가 출신의 전사 시그문드(Sigmund)가 옛 시그투나 출신이라고 언급되었다.
고고학적 유적
포른시그투나에서는 철기 시대의 고분과 가옥 등의 고고학적 유적이 발굴되었다. 두 개의 대형 3랑식(三廊式) 건물 유적, 게르만 철기 시대 해안선 위의 테라스 구조물, 항구 흔적, 대형 고분 및 여러 소형 묘지군이 확인되었다. 발굴 결과 이 유적들은 벤델 시대(Vendel period)와 바이킹 시대(Viking Age), 즉 6세기에서 11세기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역사적 변천
포른시그투나는 철기 시대 및 중세 초기의 왕실 영지로서, 구웁살라(Old Uppsala)와 웁살라 신전(Temple at Uppsala)으로 이어지는 수로에 전략적으로 위치해 있었다. 10세기경에는 명칭이 현재의 시그투나로 이전되었으며, 이후 기능의 대부분이 현대 시그투나로 옮겨갔다.
1170년대에는 교황 알렉산데르 3세가 크누트 에릭손 왕과 얄 비르거 브로사에게 보낸 서한에 "Fornesitune"이라는 이름으로 언급되어 있다. 1299년에는 비르거 막누손 왕이 "Sightonia Antiqua"에서 체류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1315년에는 에리크 막누손 공작이 "Siktonia vetus"(옛 시그투나) 일부를 하사받은 내용이 《스웨덴 외교문서집(Svenskt Diplomatarium)》에 등장한다. 1541년 구스타브 1세 바사의 장부에는 "Forsictuna", "Foorsictuna" 등의 표기로 기록되었다. 17세기 이후로는 시그닐즈베리(Signhildsberg)라는 저택명으로 불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