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룸 로마눔(라틴어: Forum Romanum)은 고대 로마 시대의 정치·경제·종교·사회의 중심지였던 직사각형 광장(포룸) 유적이다. 현대 이탈리아어로는 포로 로마노(Foro Romano), 영어로는 로만 포럼(Roman Forum)이라고 부른다. 이탈리아 로마 구도심의 팔라티노 언덕과 캄피돌리오 언덕 사이에 위치한다.
기원과 위치
포룸 로마눔이 있던 자리는 원래 자주 침수되기 쉬운 습지대였으나, 로마 왕정 시기 트루리아 왕들에 의해 대대적인 간척 및 매립 작업이 진행되어 단단한 평지로 조성되었다. 기원전 7세기경부터 사람들이 정착하기 시작하였으며, 로마 신화에 따르면 로물루스가 다스리던 팔라티노 언덕과 티투스 타티우스가 다스리던 캄피돌리오 언덕 사이의 만남의 장소로 기능하였다.
역사적 기능
고대 로마 역사 내내 포룸 로마눔은 로마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였다. 이곳에서는 개선식, 공공 연설, 선거, 재판, 검투사 경기 등 국가의 주요 행사가 열렸다. 공화정 시기에는 원로원 회의장, 재판소, 정부 기관 건물들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었으며, 율리우스 카이사르 시기에는 율리우스 바실리카가 건설되어 원로원 회의장과 재판장이 이곳으로 이전되었다.
제정 시대에 접어들면서 경제적 기능의 상당 부분은 트라야누스 포룸 같은 더 큰 시설로 이전되었으나, 포룸 로마눔의 정치적 중요성과 상징성은 유지되어 서로마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로마 제국의 상징적 중심지로 남았다.
주요 건축물
포룸 로마눔에는 수많은 신전, 바실리카, 개선문이 세워졌다.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사투르누스 신전, 카스토르와 폴룩스 신전, 콩코르디아 신전, 베스타 신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개선문, 아우구스투스의 아치, 디부스 율리우스 신전(율리우스 카이사르를 기리는 신전) 등이 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기원전 44년 이곳에서 암살당했으며,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그의 장례 연설을 한 장소이기도 하다.
쇠퇴와 발굴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 포룸 로마눔은 점차 쇠퇴하였다. 608년 동로마 제국의 포카스 황제를 기리는 돌기둥이 마지막으로 세워진 이후, 중세 시기 동안 건축 자재를 위한 약탈과 풍화로 폐허로 변모하였다.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예술가와 고고학자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으며, 1803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개선문의 잔해 제거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복원 작업이 이루어졌다. 1898년 이탈리아 정부에 의해 공식 발굴이 시작되었으며, 현재도 발굴과 보존 작업이 지속되고 있다.
현재
포룸 로마눔은 연간 약 45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이탈리아 로마의 대표적인 고고학 유적지이다. 콜로세움, 팔라티노 언덕과 함께 고대 로마 유적의 핵심을 이루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일부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