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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루 그로자

페트루 그로자(Petru Groza, 1884년 12월 7일~1958년 1월 7일)는 루마니아의 정치인이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의 점령 하에서 수립된 루마니아 최초의 공산당 주도 정부의 총리(1945~1952)를 지냈으며, 이후 국가평의회 의장(1952~1958)으로서 루마니아의 명목상 국가원수직을 역임하였다.

생애 초기

그로자는 1884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영토였던 트란실바니아의 버치아(현재 루마니아 후네도아라 주)에서 부유한 정교회 사제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다페스트 대학교에서 법학과 경제학을 공부하였고,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1907)한 후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정계 입문과 농민전선 창설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인 1918년, 루마니아 민족당(PNR)에 가입하며 정치 활동을 시작하였고, 트란실바니아 디렉토리 평의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1926년에는 알렉산드루 아베레스쿠 내각에서 국무장관을 지냈다. 1928년 정계에서 잠시 은퇴하였으나, 대공황을 계기로 1933년 좌파 농민 조직인 '농민전선(Frontul Plugarilor)'을 창설하였다. 이 조직은 이후 루마니아 공산당과 긴밀히 협력하게 된다.

총리 재임(1945~1952)

1945년 2월, 소련의 안드레이 비신스키 외무부 차관이 부쿠레슈티에 도착하여 당시 국왕 미하이 1세에게 니콜라에 러데스쿠 총리를 해임하고 그로자를 총리로 임명할 것을 요구하였다. 미하이 1세는 소련의 압박에 직면하여 이를 수용하였고, 1945년 3월 6일 그로자는 총리로 취임하였다.

그로자 내각의 주요 정책은 다음과 같다:

  • 토지개혁 시행: 50헥타르 이상의 토지를 몰수하여 재분배하였다.
  • 북트란실바니아 회복: 1945년 3월 소련으로부터 제2차 비엔나 협정으로 헝가리에 할양되었던 북트란실바니아 영토를 되찾았다.
  • 반대파 탄압: 여러 신문사들을 폐간하였고, 1947년에는 국민농민당( PNȚ )과 국민자유당(PNL)을 해산시켰다. 이uliu 마니우 등 주요 반대파 지도자들은 종신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 1947년 12월 30일: 미하이 1세 국왕에게 퇴위 문서에 서명하도록 강요하였고, 같은 날 의회는 군주제 폐지와 루마니아 인민공화국 수립을 선언하였다.
  • 1948년 6월 11일: 산업 국유화 법안 통과, 소련식 계획 경제 체제 도입.
  • 루마니아는 1949년 코메콘(COMECON), 1955년 바르샤바 조약 기구의 창립 회원국이 되었다.

국가평의회 의장 재임(1952~1958)

1952년 6월, 그로자는 총리직을 게오르게 게오르기우데지에게 넘기고 국가평의회 의장(명목상 국가원수)으로 취임하였다. 그는 공산당에 공식적으로 입당하지 않은 비당원 신분으로서 루마니아 인민공화국의 최고 지위에 오른 인물이다.

사망과 평가

1958년 1월 7일, 그로자는 부쿠레슈티에서 위 수술 후 합병증으로 재임 중 사망하였다. 향년 73세.

그로자는 루마니아 공산 정권 초기의 핵심 인물로, 소련의 지원에 의존하여 권력을 유지하면서 루마니아를 공산주의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실질적인 권력은 루마니아 공산당 서기장 게오르게 게오르기우데지와 아나 파우케르 등 공산당 지도부가 장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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