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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회글

페터 회글(독일어: Peter Högl, 1897년 8월 19일 ~ 1945년 5월 2일)은 독일의 군인이자 경찰관으로, 제2차 세계 대전 시기 나치 친위대(SS)에서 상급돌격대지도자(SS-Obersturmbannführer, 중령급)에 해당하는 계급에까지 이르렀다. 그는 아돌프 히틀러의 개인 경호를 담당하던 국가보안국(RSD, Reichssicherheitsdienst) 소속 장교로 활동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베를린 공방전 당시 퓌러엄폐호(Führerbunker)에 함께 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생애 초기와 군 복무

페터 회글은 독일 제국 바이에른 왕국의 딩골핑(Dingolfing)에서 태어났다. 학교를 마친 뒤 란트슈트(Landshut)에서 방앗간 일을 하던 그는 1916년 제16바이에른 보병연대에 입대하여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전쟁 중 하사(Unteroffizier) 계급에 도달한 그는 1919년 퇴역한 뒤 바이에른 경찰에 들어갔다.

나치 친위대 시절

나치당이 정권을 장악한 이후 회글은 형사경찰로 소속을 옮겼고, 경찰 조직이 친위대에 종속되면서 친위대 대원(대원 번호 249,998)으로 입대하였다. 1933년 히틀러의 경호원이 되었고, 1934년 상급돌격지도자(Sturmbannführer, 중위급)로 승진했다.

1935년 4월부터는 국가보안국(RSD)에서 요한 라텐후버(Johann Rattenhuber)의 부관으로 일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RSD 제1과 과장으로 승진했다. 이 직책에서 그는 오버잘츠베르크, 뮌헨, 베를린 등지를 오가며 히틀러의 경호를 담당했다. 1944년 11월 이후로는 베를린에 머물며 형사이사관(Kriminalrat) 직함을 지녔다.

퓌러엄폐호 시기

1945년 1월부터 회글은 국가수상부 지하의 퓌러엄폐호를 드나들기 시작했으며, 베를린 공방전이 시작되면서 해당 시설은 히틀러의 최후 본부가 되었다.

1945년 4월 27일, 회글은 히틀러를 버리고 도주를 준비하던 하인리히 힘러의 연락책인 헤르만 페겔라인(Hermann Fegelein) 집단지도자를 체포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페겔라인은 베를린의 아파트에서 민간인 복장으로 갈아입고 도피를 준비 중이었으며, 회글과 RSD 요원들은 그를 체포하여 퓌러엄폐호로 압송했다. 이후 페겔라인은 군법회의를 거쳐 RSD에 의해 처형되었다.

1945년 4월 30일 히틀러가 자살한 후, 회글은 에발트 린들로프(Ewald Lindloff), 한스 라이서(Hans Reisser), 하인츠 링에(Heinz Linge) 등과 함께 히틀러의 시신을 엄폐호 밖으로 운반하여 화장하는 일에 참여했다.

사망

1945년 5월 1일 밤, 회글은 일행과 함께 소련군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베를린의 바이덴다머 교(Weidendammer Brücke)를 건너는 과정에서 머리에 부상을 입었고, 그 부상이 악화되어 5월 2일 한밤중에 사망했다. 그의 나이는 향년 47세였다.

평가

페터 회글은 히틀러의 최측근 경호 인력 중 한 명으로서 제3제국 말기의 주요 사건들—특히 페겔라인 체포, 히틀러 시신 처리, 그리고 베를린 최후의 탈출 시도—에 직접 관여한 인물로 역사적 기록에 남아 있다. 그의 생애와 활동에 관한 상세한 기록은 안토니 비버(Antony Beevor)의 《베를린: 몰락 1945》, 안톤 요아힘슈탈러(Anton Joachimsthaler)의 《히틀러의 최후의 날들》 등의 연구서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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