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회랑(페르시아어: دالان پارسی, 영어: Persian Corridor)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영국 원조 및 미국 무기대여법(Lend-Lease) 물자가 소련으로 수송되던 보급로를 가리키는 역사적 명칭이다. 이 보급로는 이란을 통과하여 소련 아제르바이잔으로 이어졌다.
소련에 제공된 미국 무기대여법 원조 총 1,750만 영국톤(약 1,780만 톤) 가운데 약 790만 영국톤(약 45%)이 이란을 통해 운송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페르시아 회랑이 제2차 세계 대전 중 연합국의 대소련 원조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음을 보여 준다.
어원 및 명칭 유래
당시 영문 공식 문서에서는 "페르시아"(Persia)라는 단어를 "이란"(Iran)과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하였다. 영국 정부의 서신에서 윈스턴 처칠은 이웃국인 이라크(Iraq)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이란" 대신 "페르시아"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배경
1941년 6월 독일의 소련 침공(바르바로사 작전) 이후 영국과 소련은 동맹 관계가 되었다. 양국은 새로 개통된 이란 횡단 철도를 페르시아만에서 소련으로 물자를 수송하는 매력적인 경로로 평가하였다. 그러나 당시 중립을 표방하던 이란의 레자 샤 팔라비가 독일 국민을 추방하고 연합국 편에 서는 것을 거부하면서, 1941년 8월 영국과 소련은 이란을 침공하고 군주를 체포하여 남아프리카로 망명시켰다. 이후 레자 샤의 아들인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가 왕위에 올랐다.
1942년 미국은 철도 구간을 유지하고 운영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이란에 군사력을 파견하였다. 1943년 9월 이란은 독일에 선전포고하였고, 두 달 후인 1943년 11월에는 테헤란 회담이 처칠, 루스벨트, 스탈린 간에 개최되었다.
보급 경로와 운송 규모
보급 물자는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 출발하여 선박으로 희망봉을 돌아 페르시아만으로 항해한 뒤, 이란의 여러 항구(부셰르, 반다르 샤푸르 등)에서 하역되었다. 이후 철도나 긴 트럭 호송대를 통해 북쪽으로 운반되었으며, 일부는 카스피해를 건너 소련 영토로 이어졌다. 주요 육로 경로는 항구에서 테헤란으로, 그다음 테헤란-아시가바트 또는 테헤란-바쿠로 이어졌다.
페르시아 회랑을 통해서는 스터드베이커 US6 트럭부터 미국 통조림 식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군수물자가 소련에 전달되었다. 미국 육군 병력은 원래 이란-이라크 근무 사령부(Iran-Iraq Service Command)에 소속되었으며, 이후 페르시아만 근무 사령부(PGSC)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이는 미국이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기 전에 무기대여법 물자를 운송하기 위해 설립된 미국 군사 이란 임무의 후신이었다.
페르시아 회랑을 통한 화물 운송량은 약 416만 영국톤(약 423만 톤)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수치는 군용기 수송을 포함하지 않은 것이다.
전략적 의의
페르시아 회랑은 북극해를 가로지르는 북부 경로와 블라디보스토크를 통한 태평양 경로와 함께 소련에 대한 주요 보급 경로 중 하나였다. 특히 북극 항로에서의 독일군 군사 작전으로 인해 미국의 첫 번째 의정서 이행이 방해되면서, 연합국은 페르시아 회랑의 개발 필요성에 더 큰 압박을 받았다. 페르시아 회랑은 소련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개발된 유일한 실현 가능하고 전천후적인 경로로 평가되었다.
참고 문헌
- Coakley, Robert W. (2000) [1960]. "The Persian Corridor as a Route for Aid to the USSR"
- Motter, T. H. Vail (2000) [1952]. 《The Persian Corridor and Aid To Russia》. Washington: 미국 육군 군사 연구소.
- Ward, Steven R. (2009). 《Immortal: A Military History of Iran and Its Armed Forces》. Georgetown University Press.
- Churchill, Winston. 《The Second World W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