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유대인(Persian Jews)은 역사적으로 페르시아 제국(현 이란 지역)과 연관된 유대인들의 후손을 가리키는 명칭이다. 현대적 맥락에서는 이란 유대인(Iranian Jews)과 동의어로 사용되며, 히브리어로는 יהודים פרסים(Yehudim Parsim), 페르시아어로는 یهودیان ایرانی(Yahudiān-e Irāni)라고 한다.
역사적 기원
페르시아 유대인의 역사는 기원전 727년경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 왕들에 의해 유대인들이 포로로 끌려온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6세기, 아케메네스 왕조의 키루스 2세(고레스 대왕)가 바빌론을 정복한 후 유대인들의 바빌론 유수를 해방시키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수 있도록 허용한 사건은 유대 역사에서 결정적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이때 귀환하지 않고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 지역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페르시아 유대인 공동체의 기초를 형성했다. 구약성경의 에스라서, 느헤미야서, 에스델서, 다니엘서, 이사야서 등에는 페르시아에 거주한 유대인들의 삶과 경험이 기록되어 있다.
고대 및 중세 시기
아케메네스 제국 시기 페르시아의 유대인들은 대부분 자체 공동체를 이루어 생활했다. 사산 왕조 시기에는 일부 샤한샤(황제)들이 유대인 후궁을 두기도 했으며, 야즈데게르드 1세는 이스파한에 유대인 구역(예후디예) 건설을 지원한 사례가 있다. 다만 시기에 따라 유대인의 지위는 부침을 겪었다.
중세 시기 몽골 제국의 일 칸국이 이란을 정복한 후, 당시 인구 다수를 차지하던 무슬림을 견제하기 위해 유대인들이 관료로 중용되기도 했다. 일 칸국의 역사가 라시드 앗 딘 하마다니가 유대교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한 대표적 사례이다. 이후 사파비 왕조 시기에는 유대인들의 사회적 지위가 하락하였다.
근현대
팔라비 왕조 시기(1925~1979) 이란은 친유대주의 정책을 펴 중동에서 유대인들에게 가장 안정적인 국가 중 하나였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당시 이란에는 약 10만~15만 명의 유대인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경제·사회적으로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 이후 상황이 급변하였다. 혁명 직후 많은 유대인들이 이란을 떠났으며, 1978년 약 8만 명이었던 이란 내 유대인 인구는 2006년 약 9,252명으로 급감하였다. 2016년 이란 인구조사에 따르면 이란 내 유대인 인구는 9,826명이었으며, 2021년 기준 약 8,500명으로 집계된다.
현대적 분포
오늘날 페르시아 유대인 및 그 후손의 총인구는 약 30만~35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스라엘에 약 20만~25만 명, 미국(특히 로스앤젤레스, 뉴욕, 볼티모어)에 약 6만~8만 명, 이란에 약 8,500명, 그 외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서유럽 등에 소규모 공동체가 분포한다.
언어와 문화
페르시아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이란어군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한다. 페르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일부는 쿠르드어를 사용한다. 히브리 문자로 표기된 유대 페르시아어(Judeo-Persian)는 문어로서 존재한다. 하위 그룹으로는 산악 유대인(유대타트인, 주후리어 사용), 부하라 유대인(부하라어 사용), 그리고 쿠르디스탄 지역의 훌라울라 유대인(아람어 계열 언어 사용) 등이 있다.
종교와 정체성
페르시아 유대인은 유대교를 신앙으로 하며, 미즈라흐 유대인(동방 유대인)의 한 분파로 분류된다. 다만 미즈라힘이 주로 아랍어나 아람어를 사용한 것과 달리, 페르시아 유대인은 이란계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이란 내 유대인은 이란 헌법에서 보호받는 소수 종교로 인정되며, 이란 의회에 한 석을 보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