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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레야슬라프 조약

페레야슬라프 조약(러시아어: Переяславская рада)은 1654년 1월, 현재 우크라이나 중부 키예프주에 위치한 페레야슬라프(당시 명칭, 현재의 페레야슬라우)에서 카자크 수장국(코사크 헤트만국)의 헤트만 보흐단 흐멜니츠키와 루스 차르국의 차르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 사이에 체결된 조약이다. 이 조약은 카자크 수장국이 루스 차르국의 보호령으로 편입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역사적 배경

17세기 중반,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지배를 받고 있던 우크라이나 지역의 정교회 신자들은 폴란드 귀족들로부터 민족적·종교적 억압을 받고 있었다. 1648년 보흐단 흐멜니츠키는 흐멜니츠키 봉기라고 불리는 대규모 반란을 일으켜 여러 전투에서 폴란드 군대를 격파했고, 1649년 즈보리우 조약을 통해 카자크의 자치권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1651년 베레스테츠코 전투에서 크림 타타르족의 배신으로 큰 패배를 당하면서 흐멜니츠키는 외부의 군사적 지원이 필요해졌다.

1653년, 흐멜니츠키는 루스 차르국에 자포리자 카자크를 보호해 줄 것을 요청했다. 같은 해 가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젬스키 소보르(전국회의)는 자포리자 카자크를 루스 차르국의 국민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했고, 루스 차르국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에 전쟁을 선포했다.

조약의 내용과 성격

페레야슬라프 조약의 원본은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이 조약의 성격과 내용에 대해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해석이 상이하다. 러시아 측은 이 조약이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병합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우크라이나 측은 이는 폴란드를 견제하기 위한 군사 동맹에 가까우며 카자크 수장국의 자치권은 유지되었다고 강조한다. 조약의 이행을 위해 같은 해 3월 모스크바에서 추가 협의가 이루어졌으며, 이에 따르면 러시아는 외교권을 제외한 카자크 수장국의 자치를 상당 부분 허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향

이 조약은 이후 루스 차르국과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간의 전쟁(1654년~1667년)으로 이어졌으며, 전쟁 결과 안드루소보 조약을 통해 좌안 우크라이나와 키예프가 루스 차르국에 귀속되었다. 페레야슬라프 조약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관계의 역사적 기점으로 평가되며, 소련 시기에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재통일'로 선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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