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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레야슬라블 공국

페레야슬라블 공국(우크라이나어: Переяславське князівство, 러시아어: Переяславское княжество)은 중세 키예프 루스 시기에 오늘날 우크라이나 중부 지역에 존속했던 루스의 지역 공국이다. 수도는 트루비시 강 연안의 페레야슬라블(현재 우크라이나의 페레야슬라우)이었다.

시기와 범위

페레야슬라블 공국의 설립 시점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관점에 따라 차이가 있다. 988년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야로슬라프 1세(현자)의 아들들 사이에 키예프 루스가 분할되던 1054년경에 반독립적 영지로서 성립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공국은 드니프로 강 중류 좌안 지역에서 동쪽으로는 세베르스키 도네츠 강 부근까지 이르는 넓은 영토에 걸쳐 있었다. 키예프 대공의 젊은 아들들이 통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역사

《원초 연대기》(Primary Chronicle)에 따르면 페레야슬라블이라는 도시는 992년경 건설되었다고 하며, 고고학적 증거 역시 이 시기와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도시는 볼로디미르 대공이 페체네그 유목민과 전투를 벌였던 강의 여울목에 위치했다. 페레야슬라블은 초기에 키예프와 체르니히우 공국에 이어 키예프 루스에서 중요한 도시 중 하나였다.

1254년의 유산 분할에서 브세볼로트가 페레야슬라블을 받으면서 공국은 반독립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이후 이 공국은 쿠만(폴로브치) 유목민의 잦은 침략에 노출된 변경 지역으로, 여러 공후들이 쿠만에 대항하여 전쟁을 벌였다. 특히 브세볼로트의 아들 볼로디미르 모노마흐가 1094년부터 1113년까지 이 공국을 통치하며 쿠만과의 전쟁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239년 3월, 페레야슬라블 공국은 몽골 제국의 침략으로 정복되고 도시는 철저히 파괴되었다. 이후 도시 주변 지역은 오랫동안 사람이 거주하지 않았다가 15세기에 이르러서야 작은 정착지가 다시 나타났다. 한편 일부 학자들은 몽골의 침략 이후에도 공국이 골든 호드의 조공국으로서 일정 기간 명목상 존속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14세기 중반 무렵에는 리투아니아 대공국이 이 지역의 핵심 영토들을 장악하게 되었다.

명칭 주의

러시아 모스크바 북동부에 위치한 페레슬라블잘레스키(1152년 건설)는 동일한 어원을 가진 별개의 도시이므로, 트루비시 강 연안의 페레야슬라블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역사학에서는 전자를 '루시의 페레야슬라블' 등으로 구분하여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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