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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란테 곤차가

페란테 곤차가(Ferrante Gonzaga, 1507년 1월 28일 ~ 1557년 11월 15일)는 이탈리아의 귀족 가문인 곤차가 가문 출신의 콘도티에로(용병대장) 이자, 곤차가 가문의 분파인 구아스탈라 가문(Guastalla line) 의 시조이다. 페르디난도 1세 곤차가(Ferdinando I Gonzaga)라고도 불린다.

생애

페란테 곤차가는 만토바(Mantova)의 후작이었던 프란체스코 2세 곤차가와 이사벨라 데스테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6세 때 미래의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의 종자(侍者)로 스페인 궁정에 보내졌으며, 이후 생애 내내 카를 5세에 대한 충성을 유지했다.

1527년에는 로마 약탈(Sack of Rome) 에 참여하였고, 1530년 볼로냐에서 열린 카를 5세의 대관식에도 참석했다. 부르봉의 샤를 사망 당시(1527년) 이탈리아 지역 신성 로마 제국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1531년에는 황금 양모 기사단(Order of the Golden Fleece) 의 기사가 되었다.

페란테는 로트렉 자작 오데 드 푸아 휘하의 프랑스군의 공격으로부터 나폴리를 방어했고, 피렌체 공화국의 항복을 받아냈다. 이 공로로 교황 클레멘스 7세는 그를 교황령 베네벤토의 총독으로 임명했다. 1535년 튀니스 원정과 1541년 알제 원정에서는 3,000명의 기병을 이끌고 오스만 제국에 맞서 싸웠다. 시칠리아 부왕(1535년~1546년)을 역임했으며, 이를 기념하여 시칠리아의 한 요새에 그의 이름이 붙여지기도 했다. 이후 밀라노 공국의 총독(1546년~1554년)을 수행했으며, 이 기간 동안 파르마 전쟁(War of Parma)에 참전했다.

구아스탈라 영지 획득

1529년 이사벨라 디 카푸아(Isabella di Capua)와 혼인하여 몰페타(Molfetta)와 조비나초(Giovinazzo) 영지를 획득했으며, 이를 통해 나폴리 왕국의 핵심 봉건 영주 중 한 명이 되었다. 1539년에는 루도비카 토렐리 여백작으로부터 구아스탈라 백작령을 22,280 스쿠디에 매입하였다. 구아스탈라는 신성 로마 제국의 제국제후(Reichsfürst) 지위를 부여받았으며, 규모는 작았으나 폭넓은 자치와 사실상의 독립을 누렸다.

후원 활동 및 사망

페란테는 르네상스 시대의 후원자로서 조각가이자 메달 제작자인 레오네 레오니(Leone Leoni) 의 후원자였으며, 브뤼셀에서 제작된 'Fructus Belli'(전쟁의 과실)라는 제목의 태피스트리 시리즈를 후원하기도 했다.

1557년, 낙마 사고와 생캉탱 전투(Battle of Saint-Quentin)에서 얻은 전투 피로로 인해 브뤼셀에서 사망했으며, 만토바 대성당의 성구 보관실에 안치되었다. 그의 구아스탈라 지위는 아들 체사레 1세 곤차가가 계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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